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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철소 전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491
한자 多仁鐵所戰鬪
영어의미역 Battle of Daincheolso Administrative District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산 81-1지도보기|금곡리 산 16지도보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투
발생(시작)연도/일시 1254년 9월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254년 9월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유학산성
관련인물/단체 차라대

[정의]

고려 후기 유학산성에서 다인철소민과 몽고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개설]

고려시대 철소(鐵所)는 생활 용구나 무기류의 제작에 필요한 철을 생산하거나 제작하는 특수민들의 집단 거주지이다. 다인철소는 지금의 충주시 대소원면 지역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충주 서쪽 30리”에 있었다 하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당시 이 지역이 ‘충주목 이안면’으로 편성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인철소민의 항전에 대해서는 『고려사(高麗史)』에 “고종 42년(1255) 다인철소의 사람들이 몽고군을 막은 공이 있으므로, 소(所)를 올려 익안현(翼安縣)으로 승격시켰다”라는 간략한 기록이 전할 뿐이다. 그러나 1255년(고종 42)은 몽고군이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를 휩쓸던 어지러운 시기였다. 1255년에 다인철소민이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해도 그 해에 포상 조치까지 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또한 1254년 몽고군을 물리친 공으로 충주가 국원경으로 승격되었으므로, 다인철소 전투가 벌어진 때는 몽고군이 충주 지역을 침략한 1254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적 배경]

고려와 몽고가 처음 접촉한 것은 1219년(고종 6) 고려가 강동성(江東城)에 있는 거란족을 평정할 때 몽고의 후원을 얻어 공동 작전을 취했을 때이다. 이 일을 빌미로 이후 몽고는 고려에 대한 은인을 자처하며 사신을 보내 막대한 공물을 요구하였다.

1225년(고종 12) 1월 몽고의 사자 저고여(著古與)가 고려에서 공물을 거두어 귀국하던 중 압록강 변에서 도적 떼에게 살해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몽고는 이 사건의 책임을 고려에 물으며 국교를 단절하고, 이것을 구실로 1231년(고종 18) 8월 고려를 침입하기 시작하여 1258년(고종 45) 강화를 맺을 때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전국을 유린하였다.

고려는 몽고와의 장기전을 계획하고 이듬해인 1232년(고종 19) 서울을 강화도로 옮기고 여러 지역에 사자를 보내어, 백성들에게 적이 침입하면 섬이나 산성으로 옮기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이때 몽고군을 맞아 적극적으로 대항하여 싸운 것은 정부군이 아니라 각 지방의 향리와 농민, 천민 등이었다.

특히 지방에서 이루어진 대몽 항전 중 충주는 몽고의 침입이 사실상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항쟁이 전개되었던 특별한 지역이다. 이 지역 또한 몽고군을 맞아 싸운 주체는 정부군이나 관원들이 아니라 관노, 소민(所民) 등 충주의 주민들이었다.

[목적]

고려를 침략한 몽고군은 전투 중에 소요되는 식량과 무기를 거의 현지에서 조달하였다. 특히 철은 몽고군이 전쟁에서 사용하는 무기류 외에 기병의 소모품인 편자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재료였다. 그러므로 몽고군으로서는 철산지와 관련 기술자를 확보하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당시 충주는 고려의 중요한 철산지로 다인철소 외에도 관내에는 여러 곳에 철산지가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충주 지역은 고려뿐만 아니라 몽고군에게도 전략적으로 중요하므로 이곳을 확보하기 위해 공방전을 벌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경과]

몽고군이 충주 지역을 침략하자 다인철소민은 철광석과 제련된 철, 여러 가지 제련 도구, 무기나 도구를 만드는 시설 등을 몽고군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유학산성에 이전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254년 9월 차라대가 지휘하는 5,000여 명의 몽고군이 제철 기술자와 철과 무기류를 확보하기 위해 유학산성을 공격하자 다인철소의 향리를 맡고 있던 지씨(池氏)와 어씨(魚氏)의 지휘 하에 일치단결하여 몽고군을 격퇴하였다.

[결과]

몽고군의 침입을 막아 물리친 공으로 다인철소는 1255년 익안현으로 승격되었고, 소민들도 양인으로 상승하였다. 다인철소민이 몽고군을 격퇴한 전승지로 추정되는 유학산성은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산 81-1번지금곡리 산 16번지에 걸쳐 있는 유학산[396m] 정상 8부 능선에 있다.

[의의와 평가]

다인철소민이 몽고군을 맞아 싸워 승리한 다인철소 전투는 민중 항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다인철소민의 항전은 무기류의 제작 및 공급지로서 충주 지역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에 의해 더욱 가치 있는 싸움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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