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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713
한자 忠州周井山烽燧
영어의미역 Beacon Fire Station of Jujeongsan Mountai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 산 47-2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백종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봉수대
건립시기/연도 조선시대
길이 동서 19.5m|남북 27m
둘레 50m
면적 298㎡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 산 47-2 지도보기
소유자 국유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북도 기념물 제113호
문화재 지정일 2000년 9월 15일연표보기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개설]

충주 주정산 봉수는 충청북도 충주의 관광지인 수안보에 인접하고 있는 주정산의 4개 봉우리 중에서 하주정산 정상에 쌓은 봉수이다. 조선시대 전국적인 봉수망에서 제2거(炬)에 소속된 간봉(間烽)으로 마골재 봉수대림산 봉수를 연결하였다.

[건립경위]

충주 주정산 봉수의 직접적인 건립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주정산의 동쪽과 북쪽으로 봉수로가 닿는 마골재대림산과의 직접적인 거리가 매우 멀 뿐만 아니라 사이에 산봉우리가 가로 막고 있어 문경의 탄항(炭項) 봉수에서 마골재로 연결된 봉수로가 직접 충주 대림산성으로 연계되지 못하므로 주정산을 거쳐 연계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위치]

충주 주정산 봉수에 대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비롯한 조선시대의 각종 지리지에 주정산(周井山)에 위치하며 북으로 대림산, 동으로 마골점에 응(應)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이곳은 내륙 관광지인 수안보와 인접하고 있다. 봉수가 있는 주정산의 산줄기는 충주시와 괴산군의 경계를 이루며 멀리는 소백산맥과 이어지며, 봉수대는 산맥 사이로 형성된 계곡과 교통로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동남쪽으로는 소백산맥의 준령들 사이로 마골재 봉수대가 보이고 북으로는 대림산 봉수대가 보이는 위치에 있다.

[형태]

충주 주정산 봉수는 산 정상의 남북 약 27m, 동서 19.5m의 암반을 기반부로 삼아 석축하였다. 외곽 석축은 남북 길이가 최대 21m, 동서 너비가 최대 11m로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외곽 석축은 둘레가 약 50m로 영조척 31.24㎝를 기준으로 하면 150척에 해당한다.

석축은 암반 위에 아래쪽은 커다란 할석을 쌓고 위로 오르면서 내측으로 수렴하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도록 비교적 견고하게 쌓았다. 지형에 따라 1.5~4.5m의 높이로 윗부분의 너비는 1.1~1.3m로 일정하게 축조하였다. 이러한 외곽 석축은 나쁜 짐승을 피하거나 봉조의 불이 산 아래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화벽 역할을 하였다.

봉수대는 암반의 가장 높은 부분의 가장자리를 보완하여 석축한 외곽 석축, 즉 봉돈 외곽의 방화장(防火墻) 혹은 방호벽(防護壁)과 등(磴: 계단식 통로)을 갖춘 출입구와 5개의 봉조(烽竈) 혹은 봉돈(烽墩), 그리고 고사(庫舍)터 및 내구(內溝)와 외연부(外沿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충주 주정산 봉수의 외곽 석축구간에는 모두 3개소의 출입시설이 확인된다. 먼저 석축 북쪽의 개구부(開口部)는 할석으로 축조하였는데, 측벽의 길이는 동쪽 1.2m, 서쪽 2.2m으로 너비는 0.8m 정도로 작다. 남쪽 출입시설은 외곽 석축의 동남단, 즉 봉수대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다. 문구부는 석축 성곽의 현문(懸門)과 같은 구조이다. 세 번째 출입시설은 봉수대의 서벽에 위치하는데 현재의 출입로로 이용되고 있다.

[현황]

충주 주정산 봉수 외곽 석축과 경사면에서 많은 양의 기와가 발견되어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는 3m 간격을 두고 아궁이와 굴뚝 자리가 정남향으로 확인되었으며, 수저와 명문이 새겨진 도기편, 갈고리 모양의 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로 볼 때 봉군(烽軍)이 머물렀던 집과 각종 물품을 보관하던 시설, 즉 고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봉돈부는 남북 길이 약 10m, 동서 너비 약 5m의 석축부에 위치한다. 봉돈은 60~80㎝ 높이로 축조되었는데, 서쪽과 북쪽에 치우쳐 5개의 봉조가 있으나 직선으로 배열되지 않았다. 봉조는 할석으로 축조되었으나 규모가 모두 일정하지 않지만 공통적으로 단면(凹형)의 구를 이룬 부분으로 연결되는 화구가 있다.

1호 봉조는 가장 북쪽에 위치하며 북쪽 출입구의 바로 안쪽에 해당한다. 북쪽과 동쪽은 암반을 이용하고 서쪽과 남쪽은 할석으로 축조하였다. 남북 60㎝, 동서 40㎝의 크기로 잔존 높이는 70㎝이다. 내부 바닥에서 숯을 포함한 적갈색의 흙이 확인되었다.

2호는 1호에서 서남쪽으로 높아진 곳이며 동서 너비 1m, 남북은 70㎝ 정도이다. 내부는 숯이 다량 포함된 적갈색의 사질점토로 다져졌고 화구는 북쪽에 위치한다. 3호는 2호에서 서쪽으로 2m 떨어져 있다. 봉조는 하단에 동서 80㎝, 남북 60㎝ 규모로 말각장방형의 석축을 마련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원형을 이루며 좁아지도록 하였다.

봉조의 서향하는 자리에 마감돌이 있으며, 마감돌 밖으로 80㎝ 떨어져 40㎝ 깊이의 불 땐 자리가 확인되었다. 아궁이는 너비 40㎝, 길이 50㎝ 크기의 타원형 석축이다. 3호는 불을 때는 자리와 불길이 경사면을 타고 올라 봉조로 들어가도록 한 점, 부뚜막을 이룬 마감돌 위에 판석 모양의 석재를 화창(火窓)으로 이용한 점, 봉조의 모양과 봉조의 상면에 수키와로 굴뚝을 만들었던 구조 등 봉수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4호 봉조는 3호의 봉돈부 석축 남측에서 찾아졌는데, 5개의 봉조 중 가장 큰 규모로 확인되었다. 남북 1.2m, 동서 0.8m의 규모로 현존하는 높이는 60~70㎝ 이다. 서측의 외곽 석축과 봉돈부 석축 사이에 구를 이루는 부분이 있어 이곳이 불 땐 시설이었음을 알 수 있다.

5호 봉조는 4호에서 남쪽으로 봉돈부 석축을 따라 2.5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60㎝ 크기의 말각방형이며 높이는 40㎝ 정도이다. 봉돈부 석축의 주변이면서 외곽 석축의 안쪽은 단면이 요(凹)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은 할석을 다지듯이 박아 깐 흔적이 있다.

이 부분은 최대 너비 2.2m 로 봉돈부의 바깥으로 60㎝ 정도 낮아지는데, 이곳 구(溝)에서 불을 지펴 봉돈부의 봉조로 불이 오르도록 계획된 시설임이 확인되었다. 충주 주정산 봉수에서 출토된 유물은 자기류, 도기류, 석제품류, 철기류, 기와류 등으로 대부분 조선시대의 것들이다. 이러한 유물 구성은 망이산 봉수와 매우 유사하다. 이중에서 기와와 자기는 주정산과 가까운 지역의 가마에서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출토 유물 중에서 한글과 한자를 섞어 명문을 새긴 도기 뚜껑이 있으며, 출토된 기와의 양이 많은 점으로 보아 고사의 지붕에 기와를 얹었을 가능성이 있다. 충주 주정산 봉수는 1995년 충북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으며, 1997년 복원, 2000년 9월 15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13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일반적으로 봉수는 경봉수(京烽燧), 내지봉수(內地烽燧), 연변봉수(沿邊烽燧)로 크게 구분되며 연변의 영진(營鎭)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한 권설봉수(權設烽燧)등이 있었다. 이들의 연결체계는 권설봉수에서 연변봉수를 거쳐 내지봉수를 지나 경봉수에 이르는데, 충주 주정산 봉수는 내지봉수에 속하는 간봉으로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주봉과 간봉의 형식과 구조적 차이점이 크지 않음을 밝혀주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자기와 도기, 기와 등의 생산과 유통, 소비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4.23 항목명 수정 주정산 봉수->충주 주정산 봉수로 수정(2015.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