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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768
한자 林慶業肖像
영어의미역 Portrait of Im Gyeongeop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세성리 150-11[구향골길 16-5]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유봉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5년 6월 30일연표보기 - 임경업 초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9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임경업 초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영정
제작시기/일시 조선 중기
서체/기법 골상법(骨相法)
소장처 충민공 임경업 장군 사당
소장처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세성리 150-11[구향골길 16-5]지도보기
소유자 평택임씨 충민공파 종중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세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충민공 임경업을 그린 초상화.

[개설]

현재 임경업(林慶業)[1594~1646] 장군의 영정은 국립박물관과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사당, 그리고 살미면 세성리에 있다. 세성리 평택임씨 충민공파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임경업 초상은 명나라 화가가 그렸다고 전한다. 임경업은 조선시대 명장으로 1618년(광해군 10)에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 1624년(인조 2)에 정충신 휘하에서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진무공신 1등이 되었다.

검산성, 용골성, 백마산성 등의 수축과 정비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명나라 반도(叛徒)를 토벌한 공으로 명으로부터 총병(總兵)의 벼슬을 받기도 하였다. 임경업은 친명배청(親明排淸) 사상이 강했던 인물로 청과 명의 싸움에서 청나라의 원군으로 출정하기도 하였지만 명나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명나라와 내통하였다. 그런 사실이 발각되어 청에 체포된 적도 있었으나 탈출한 뒤 명나라로 망명, 청군을 공격하다가 포로가 되었다.

이때 국내에서 심기원(沈器遠)의 모반 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연루되었다는 무고로 1646년(인조 24) 인조의 요청으로 송환되어 국문(鞠問)을 받던 중 김자점의 밀명을 받은 형리(刑吏)에 의해 장살(杖殺)되었다. 그 후 1697년(숙종 23)에 복관되었다. 원래 임경업 사우는 1677년(숙종 3)에 건립되었는데, 퇴락하자 1898년에 중건하여 임경업 초상을 봉안하고 있다. 임경업 사우 앞쪽에 세워진 임경업 쌍성각은 1788년(정조 12) 임경업과 그의 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충렬을 기리기 위한 정려를 명하여 세워진 것이다.

[형태 및 구성]

「임경업 장군 영정」은 정면상(正面像)의 전신 교좌상으로, 견본채색(絹本彩色) 바탕에 운문(雲紋)이 있는 관복을 입은 모습이다. 안면 윤곽선을 짙게 표현하여 인상적인 느낌을 주고 있으며, 옷주름은 필선으로 죽죽 그려내어 도안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충민공임장군유상(忠民公林將軍遺像)’이라 묵서(墨書)되어 있다.

[특징]

초상화 뒤편에 보이는 탁자 위에는 송(松), 죽(竹), 매(梅)가 꽂힌 백자 화병과 금빛 연화 대좌에 앉은 해태상에 향로가 올려져 있다. 향로 연기가 실타래처럼 곡선을 그리며 피어오르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탁자 윗부분에는 용을, 아래 부분에는 인물산수와 새, 나뭇가지를 표현하였는데, 초상 뒤 탁자 배치가 특이하다. 의자 전체와 신발 바닥 면까지 호피를 두른 모습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에 활약한 명장의 영정으로 조선 중기의 초상화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명나라 화가가 그린 것이기에 당시 명나라 초상화의 기법을 파악할 수 있는 문화재이다. 1995년 6월 30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4.20 항목명 수정 충민공 임경업 영정->임경업 초상으로 수정(201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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