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8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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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曗 |
영어음역 | Gwon Yeop |
이칭/별칭 | 제중(霽仲),구사(龜沙)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일성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권근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광흥창수(廣興倉守)를 지낸 권곤(權鵾)이고, 할아버지는 권심(權深)으로 안동대도호부판관(安東大都護府判官)을 지냈다. 아버지는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을 지낸 권오(權悟)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1601년(선조 34) 생원이 되었고, 1606년(선조 40) 음보로 광릉참봉(光陵參奉)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내섬시봉사(內贍寺奉事)를 거쳐 한성부참군이 되었다. 1612년(광해군 4) 추관(秋官)이 되어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 때 역도를 두둔했다는 죄로 파직되었다.
1615년 알성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호군겸오위장이 되고, 다음 해 분병조참의(分兵曹參議)가 되었다. 1617년 평해군수가 되었으나 박정길(朴鼎吉)의 사주를 받은 사형수의 무고로 면직되어 충주에 은거했다. 인조반정 후 기용되어 1624년(인조 2) 동지 겸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무고로 파직되어 충주에 있다가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충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나갔으나 강화가 이루어져 해산했다. 이 해 파주목사를 거쳐, 1635년 첨지중추부사가 되었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들어갔다가 환도 후 강릉부사가 되었다. 1639년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이어, 고성군수를 역임했다.
『구사집(龜沙集)』과 『구사금강록(龜沙金剛錄)』이 전한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검단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