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8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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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軫 |
영어음역 | Gwon Jin |
이칭/별칭 | 독수와(獨樹窩),문경(文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세영 |
조선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독수와(獨樹窩), 시호는 문경(文景). 증조부는 호조참의를 지낸 권혁(權奕)이고, 아버지는 감찰규정(監察糾正)을 지낸 권희정(權希正), 어머니는 김득우(金得雨)의 딸이다. 슬하에 권맹경(權孟慶), 권맹도(權孟度), 권맹정(權孟貞) 3남을 두었다.
1377년(우왕 3) 21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다. 권세가인 염흥방(廉興邦)의 조카딸과의 혼사를 거절해 염흥방의 미움을 사서 여러 해 동안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였다. 그 뒤 의창현령이 되어 민심을 안정시키고 폐단을 시정해 당시 시중이었던 이성계(李成桂)에게 전주판관으로 발탁되었다.
1398년(태조 7) 평안도관찰사 성석린(成石璘)의 경력(經歷, 보좌관)으로 활동했고, 정종 즉위 후 문하부직문하, 지합주사를 지냈다. 1401년 지형조사(知刑曹事), 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를 지냈고, 1406년(태종 6)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해 선정을 폈다. 청렴함이 알려져 1407년 대사헌에 올라 관의 기강을 확립하는 데 힘썼다.
1407년(태종 7) 형조판서에 올라 흠문기거사(欽問起居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그 뒤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1413년 충주목사로 부임했다. 1417년 이후 형조판서, 호조판서, 이조판서를 지냈다. 1422년(세종 4) 중군도총제(中軍都摠制)로서 정조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고, 1423년 판한성부사, 형조판서, 1426년 찬성, 1430년 이조판서에 올랐다.
1431년(세종13) 우의정 재직 중 형률을 잘못 적용해 대간의 탄핵을 받았고, 1433년 겸판이조사(兼判吏曹事) 재직 중 사람을 잘못 천거했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관직을 그만둔 뒤 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목조부터 태종이 세자로 있을 때까지의 사적을 편찬했으며, 의례상정소(儀禮詳定所)의 제조(提調)가 되어 악률을 만드는 데도 참여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삼성리 산 22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