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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877
한자 金貴榮
영어음역 Gim Gwiyeong
이칭/별칭 현경(顯卿),동원(東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성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20년(중종 15)연표보기
몰년 1593년(선조 26)연표보기
본관 상주
대표관직 좌의정|우의정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현경(顯卿), 호는 동원(東園). 할아버지는 목사를 지낸 김사원(金士元)이고, 아버지는 김응무(金應武)이다.

[활동사항]

1540년(중종 35) 진사시에 급제하고 1547년(명종 2) 알성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9년 예문관대교, 홍문관정자를 거쳐 1550년 저작(著作), 박사, 1551년 홍문관부수찬, 사간원정언, 1553년 홍문관수찬을 지내고 1555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1555년 을묘왜변 때 이조좌랑으로 도순찰사 이준경(李浚慶)의 종사관이 되어 광주에서 활약하다 돌아와 이조정랑이 되었다. 1556년 의정부검상, 사헌부집의, 1557년 시강원보덕, 1558년 홍문관전한, 승정원동부승지, 우부승지를 지냈다. 1559년 이조참의 재직 중 사간원의 탄핵으로 우부승지로 전보되었다.1560년 한성부우윤, 1570년 춘천부사, 1563년(명종 18) 부호군, 사간원대사간, 1564년 사헌부대사헌, 홍문관부제학을 지냈다.

1569년(선조 2) 도승지, 예조판서를 거쳐 1571년 병조판서로 지춘추관사를 겸하여 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이조판서, 대사헌을 역임했다. 1573년 대제학, 1580년(선조 13) 우찬성, 1581년(선조 14) 우의정, 1583년(선조 16) 좌의정,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1590년(선조 23) 평란공신 2등에 올라 상락부원군에 봉해지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나, 조헌(趙憲)의 탄핵으로 사직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양 사수를 주장했으며, 영중추부사로 임해군(臨海君)과 함께 관북으로 갔으나, 회령의 토관진무 국경인(鞠景仁)의 반란으로 임해군과 뒤이어 온 순화군과 함께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되었다. 강화를 요구하는 적장의 글을 임금에게 전달하기 위해 행재소에 갔다가 탄핵을 받아 1593년(선조 26) 희천으로 유배되어 가던 중 별세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구룡리 산53-1번지에 있다. 묘역은 약 66m²이고, 망주석과 문인석이 있다.

[상훈과 추모]

1664년(현종 5) 김귀영의 손자가 상언하여 관작이 회복되었고, 숙종허적(許積)의 건의로 신원(伸寃)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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