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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941
한자 朴彭年
영어음역 Bak Paengnyeon
이칭/별칭 인수(仁叟),취금헌(醉琴軒),충정(忠正)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봉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남도 회덕
성별
생년 1417년(태종 17)연표보기
몰년 1456년(세조 2)연표보기
본관 순천(順天)
대표관직 형조참판

[정의]

조선 전기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한 문신.

[개설]

박팽년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를 지내고 우승지를 거쳐 충청도관찰사와 형조참판을 역임했다. 세조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성삼문 등과 복위를 모의하다 발각되어 처형당한 사육신 중의 한 사람으로 아버지 박중림(朴仲林)과 동생 박대년(朴大年) 및 아들 박헌(朴憲)·박순(朴珣)·박분(朴奮)도 함께 처형되었다. 어머니·처·제수 등도 대역부도의 가족이라 하여 노비로 끌려간 뒤 부인 천안전씨의 고향인 충주에서 살게 되었다.

[가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인수(仁叟), 호는 취금헌(醉琴軒)이다.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박중림(朴仲林)이고, 어머니는 김익생(金益生)의 딸이다.

[활동사항]

1434년(세종 16) 알성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447년(세종 29)에는 다시 중시에 합격하였다. 세종의 총애를 받아 집현전 학사가 되었으며 한글 창제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1453년(단종 1) 우승지를 거쳐 이듬해에 형조참판이 되었다.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울분을 참지 못하여 경회루 연못에 빠져 죽으려 했으나 성삼문의 만류로 후일을 기약하기로 하였다.

그 뒤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형조참판이 되어 돌아온 뒤 세조가 명나라 사신을 위해 마련한 연회 장소인 창덕궁에서 거사하기로 하였으나 김질의 밀고로 발각되어 성삼문 등과 함께 혹독한 국문을 받게 되었다. 세조가 그의 재주를 아껴 모의 사실을 숨기고 자신에게 귀부하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고 회유하였으나 박팽년은 웃음을 지었을 뿐 대답하지 않았으며, 세조를 가리켜 ‘상감’이라 하지 않고 ‘나으리’라고 불렀다.

세조가 노하여 "네가 이미 신(臣)이라 칭했으며 나의 녹을 먹었으니 지금 와서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고 그게 무슨 소용이냐"라고 묻자 "나는 선왕(단종)의 신하로 충청감사가 되었으며 장계에도 신이라 한 적이 없고 녹도 먹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세조가 실제로 장계를 살펴보니 신(臣)자가 아니라 모두 거(巨)자로 쓰여 있었으며 받은 녹도 모두 창고에 봉하여 두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세조가 형을 가하기 전 김질을 시켜 술을 가지고 옥중에 가서 옛날 태종정몽주에게 불렀던 시조를 읊어 박팽년을 시험하게 하였으나 박팽년은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이야 밤인들 어두우랴,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라는 그의 굳은 절개를 나타내는 시조를 지어 응답하였다. 이후 심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사상]

경학, 문장, 필법에 뛰어나 집현전의 집대성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성품이 침착하고 말이 적었으며 소학을 몸으로 지켜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의관을 벗지 아니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게 하였다. 단종 복위 계획이 발각되어 국문을 받았을 당시의 언행으로 그의 충성심과 절개를 알 수 있다.

[저술 및 작품]

3대 멸문으로 박팽년에 대한 행장이나 문집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사실은 알 수 없으며, 다만 『취금헌천자문(醉琴軒千字文)』에 그의 글씨가 남아 있는 정도이다.

[묘소]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1동에 있는 사육신묘역(死六臣墓域)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91년(숙종 17) 복관되었다. 1758년(영조 34)에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1791년(정조 13)에는 단종에 대한 충신들의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에 올랐으며 시호는 충정(忠正)이라 하였다.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신청리 94번지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27호인 충주 박팽년 사당이 있으며 1775년(영조 51)에 명정된 박팽년의 충신문을 중앙으로 그 왼쪽에는 둘째 아들 박순(朴珣)의 충신문, 오른쪽에는 박순(朴珣)의 유복자 박일산(朴一珊)의 충신문 편액이 걸려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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