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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984
한자 李光岳
영어음역 Yi Gwangak
이칭/별칭 진지(鎭之),충장(忠壯)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정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충청북도 충주시
성별
생년 1557년(명종 12)연표보기
몰년 1608년(선조 41)연표보기
본관 광주(廣州)
대표관직 병마절도사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진지(鎭之), 이극감(李克堪)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교리를 지낸 이연경(李延慶),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이호약(李好約)이다. 민건(閔健)의 딸 정부인 여흥민씨 사이에서 아들 이근후와 세 딸을 두었다.

[활동사항]

1557년(명종 12) 충주에서 태어난 이광악은 1584년(선조 17)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영남 지방으로 진격한 왜군이 10월 진주성을 대대적으로 포위 공격하였다.

곤양군수였던 이광악은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의 명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진주성으로 들어가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좌익장이 되어 왜군에 맞섰다. 김시민이 적탄에 맞아 쓰러지자 김시민을 대신하여 작전을 지휘해 대승을 거두고 진주성을 사수하는데 성공하였다.

1594년(선조 27)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의 부장으로 동래전투에 종군한 이래로 곽재우와 호흡을 맞추어 항상 승리했기에 곽재우와 함께 양비장(兩飛將)이라 불리었다. 1598년(선조 31) 전라도병마절도사로 명나라 군대와 연합하여 금산, 함양 등지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포로가 된 아군 100여 명을 되찾고 우마 60여 필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훈련원도정을 거쳐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 3등에 올라 광평군에 봉해지고 경기도방어사가 되었다. 1607년(선조 40) 함경남도병마절도사로 있을 때 병을 핑계로 근무를 태만히 하였다고 탄핵받아 한때 투옥되기도 하였다. 1608년 5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산42번지 광주이씨 선산에 있다. 처 여흥민씨의 묘와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고 문안공 강현이 시장(諡狀)을 지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문효사에 배향됐고, 영정을 비롯하여 증시 교지, 시상, 보검이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어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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