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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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采 |
영어음역 | Yi Chae |
이칭/별칭 | 계량(季良),화천(華泉),문경(文敬),이공제(李公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성호 |
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계량(季良), 호는 화천(華泉). 할아버지는 좌참찬 이재(李縡)이다.
이채는 1774년(영조 50)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이듬해 휘령전참봉(徽寧殿參奉)이 되고 이어 사헌부와 호조와 형조의 여러 벼슬을 거쳐 돈녕부주부·음죽현감(陰竹縣監)을 지내다가 무고를 받고 파직되었다. 1790년(정조 14) 홍릉령(弘陵令)에 기용되었다.
1793년 지례현감(知禮縣監) 재직시 둑을 쌓아 농사에 도움을 주어 주민들이 그 둑을 이공제(李公堤)라 했으며, 환곡 정사를 정밀히 하고 진휼을 널리 펴는 실적으로 선산부사(善山府使)가 되었다. 이후 상주목사와 충주목사를 역임하고 1800년(순조 즉위년)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위수(衛率)와 사어(司禦)를 거쳐 경연관이 되었다. 이후 황주부사(黃州府使)를 거쳐 호조참판·한성부좌윤을 역임하고 동지중추부사로 부총관을 겸했다.
저서로 『화천집(華泉集)』16권 8책이 있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독작골에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