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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1082
한자 許礎
영어음역 Heo Cho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북도 충주시
성별
생년 1485년연표보기
몰년 1551년연표보기
본관 양천(陽川)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양천(陽川). 할아버지는 증호조판서 허형(許蘅)이고,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행훈련원부정 허감(許瑊)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활동사항]

허초는 1519년(중종 14)에 을묘사화 때에 은퇴하여 벼슬에 나가지 않고 충주에 살면서 학자로 활동을 하였다. 특히 1539년(중종 34) 유석이라는 자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려는 사건이 발생하여 다음해 충주가 예성부로 강등되었다. 이에 허초는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렸다.

유석은 충주 사람이 아니다. 유석은 원주에서 살았으며 죄를 짓고 원주관아에 구금되고 원주에서 그 사건이 처리되었음이 그가 원주 사람이라는 근거다. 다만 충주 소생이란 말로 충주의 읍호가 강등되었다. 그러나 유석의 호적은 충주에 없고 유석이 그 아버지와 충주에 살면서 걸인 행각을 하고 일정한 거처가 없었으며 4, 5년 간 원주 서면 강천리에 살았다.

충주는 한 도의 우두머리 관리가 있는 곳이고 도의 이름이 충청도이며 이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것이다. 도의 이름을 바꾸면 감사·병사·수사의 인신과 병부를 개조해야 한다. 본주와 관련되지 않은 일로 읍호가 강등되니 많은 읍인이 분노하고 있다. 본주는 선왕의 실록을 봉안하는 곳이며 왕후 4전의 외향(外鄕)이다. 남방의 왜인이 왕래할 때 경유하는 곳이므로 능호(陵號)의 이유가 다른 나라에 퍼져 평온하지 못하다. 교통의 호세장은 그 아버지를 죽였음에도 능호(陵號)되지 않았는데 유석은 그 아버지가 살아 있음에도 본주의 읍호를 강등하니 법의 적용이 공평하지 않다.” 등의 이유를 들어 읍호의 강등을 철회하고 충주로의 복구를 호소하였다. 이에 마침내 중종대왕은 대신들에게 이 문제를 논의하도록 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사후 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겸판의금부사에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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