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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1222
한자 趙德恭
영어음역 Jo Deokgong
이칭/별칭 사원(士愿)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성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의병장
출신지 충청북도 괴산군 송평동
성별
생년 1547년(명종 2)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순창
대표관직 훈련주부|양지현감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정착한 무신이자 의병장.

[가계]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사원(士愿). 한성좌윤(漢城左尹) 조승(趙勝)의 둘째 아들이다.

[활동사항]

충청북도 괴산군 송평동(松坪洞)에서 태어났으나 뒤에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水龍里)에 옮겨와 살았다. 웅장한 모습에 관대하고 엄격한 기량이 있었으며 글재주에 능했고 글씨도 잘 썼다.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으며 마음이 활달하여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았다. 재덕과 지모가 뛰어났으나 용맹하여 일찍이 붓을 던지고 말타기와 활쏘기는 물론 병법도 익혔다.

1583년(선조 16)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에 이어 호조정랑에 올랐으나 이듬해 부친상을 당해 사직하였다. 1586년(선조 19)에 복직하여 훈련주부(訓練主簿)를 거쳐 양지현감(陽智縣監)이 되었으며 임기가 끝나자 현민이 원하여 1년을 더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덕검(德儉)과 함께 초래(草萊)에서 의병(義兵)을 일으키고 왜군과 싸워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

당시 숙부인 조복(趙服)도 늙고 병든 몸에도 불구 의병을 일으켰으나 충주 남쪽에 있는 우목(牛牧)의 들에서 전사하였다. 이에 조덕공은 정예 군사를 이끌고 직접 적진으로 들어가 싸운 후 숙부의 시신을 안고 돌아와 장사를 치렀다. 이와 같은 충과 효와 우애를 겸비한 조덕공의 용맹에 대해 조야(朝野)에서 칭송이 이어졌다고 한다. 전후에는 여러 차례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에 돌아와 술을 벗 삼으며 여생을 보냈다.

[상훈과 추모]

선무공신(宣武功臣)의 호를 받고 형조참의에 증직되었으며, 충청북도 괴산군 문광면 광덕리 칠충사(七忠祠)에 배향(配享)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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