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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1353
한자 辛在蓮
영어음역 Sin Jaerye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배항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동학농민군 지도자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내산리 미산마을
성별

[정의]

1894년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약한 동학농민군 지도자.

[활동사항]

신재련은 동학의 제2세 교조 최시형(崔時亨)이 1891년 12월 당시 충주 외서촌(外西村)[현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내산리 미산마을]으로 숨어들자 자신의 집에서 약 한 달 가량 머물도록 해 주었다. 당시 신재련최시형에게 “오도(吾道)의 운이 언제 형통할 것입니까”라고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청주 금암리(현 충북 청원군 북이면 금암리) 출신인 손병희(孫秉熙)와 진천 부창리 출신인 이종석(李鍾奭)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 해 9월 18일 북접교주 최시형이 청산에 소집된 각 포 두령의 의견을 따라 봉기할 것을 결정하고, 이른바 ‘기포령’을 내리자 홍재길(洪在吉)과 함께 충주 지역 접주로 기포하였다.

당시 진천에 주둔해 있던 신재련은 충주 용수포에 집결해 있던 서장옥·허문숙의 조직과 갈등을 일으켰는데, ‘오읍집강(五邑執綱)’이라 자칭하면서 허문숙의 무리를 ‘패류(悖類)’·‘보당(堡黨)’·‘민보(民堡)’ 등으로 칭하면서 관군 측의 이두황에게 올린 글에서 팔도의 도유가 모인 것은 허문숙 등의 팔도의 난민(亂民)을 살해하려는 것이며, 보국안민을 위하여 1천 장정뿐 아니라 전국의 백성들이 모두 협응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신재련 부대는 충주 황산(黃山)에서 허문숙·맹영재가 이끄는 민보군과 싸워 크게 이겼으며, 이어 괴산에서도 성두한 부대 등과 합세하여 충주 가흥 병참부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 수비대를 물리치기도 했다. 이후 괴산 관아를 공격한 다음 보은 장내로 가서 손병희가 이끄는 북접 본대에 합류하여 공주전투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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