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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1415
한자 申泰學
영어음역 Sin Taeha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차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교육자|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상주시
성별
생년 1866년연표보기
몰년 1936년연표보기
본관 평산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개설]

신태학의 본관은 평산(平山)으로,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나 의당 박세화에게 배웠다. 1908년(융희2) 43세로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대덕리로 옮겨와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주권 회복을 위해서는 인재의 양성이 필요하다고 결심하여 평생 후학을 기르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활동사항]

당시 일본인들이 부산과 서울 간의 도로를 신설하면서 충주에서도 강제부역을 동원하려 했는데 신태학은 반대운동을 일으켰으며, 그후 조선민적제도(朝鮮民籍制度)의 시행에도 반대하다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면서 구금되었으나 단식으로 버티자 일본 당국은 일주일 만에 석방하였다.

출옥 후 일본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과 생극면 등지로 거처를 옮긴 끝에 음성군 감곡면 월정리 원통산 기슭 토굴에 은신처를 마련한 뒤 인근 유지들에게 지원 하에 후학을 교육하였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아낸 일본헌병이 관련자를 탄압하게 되자 1918년 4월에 만주의 간도성 연길현 명월구로 망명하게 되었다. 이곳까지도 일본인의 감시가 뒤따르자 연길현 조양천, 태평둔 등으로 옮기면서도 끊임없이 후진 양성을 위해 힘을 기울이다 1936년 10월 20일 향년 71세로 생을 마쳤다.

[저술 및 작품]

원통산 밑에는 신태학이 “왈이신태학 막직귀무처 하처주귀장 차산랑수양(曰爾申泰學 莫直歸無處 何處住歸杖 此山郞首陽)”이라고 남긴 시(詩)가 있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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