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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2577
한자 全義李氏
영어의미역 Jeonui Yi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문락리|대소원면 검단리|중앙탑면 하구암리|앙성면 단암리
집필자 최일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문락리|이류면 검단리|중앙탑면 하구암리|앙성면 단암리
입향시기/연도 1480년대
성씨시조 이도
입향시조 이신효

[정의]

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신효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연원]

전의이씨의 시조 이도(李棹)의 본래 이름은 이치(李齒)다. 이도는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범람하는 금강을 건너려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공으로 왕건으로부터 도(棹)라는 이름을 하사 받았다. 또한 삼한개국공신에 오르고 전의후에 봉해지면서 전의(현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를 식읍으로 하사받아 이후 후손들이 전의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전의이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78명, 재상 5명, 공신 6명, 대제학 1명, 청백리 6명을 배출했다. 충주에 입향한 전의이씨는 대사간을 지낸 이덕숭(李德崇), 강원감사를 지낸 이구령(李龜齡), 남병사를 지낸 이징서(李徵瑞), 국회의원 이종근(李鍾根) 등을 배출했다.

[입향경위]

이신효(李愼孝)가 1482년(성종 13) 충청감사로 부임한 후 정착하면서 후손들이 현 충주시 대소원면 검단리, 신니면 문락리에 세거하게 되었다. 이후 경상감사를 지낸 이효장(李孝長)의 후손들이 사패지(나라에서 하사받은 땅)인 현 중앙탑면 하구암리에 들어와 세거하기 시작했고, 1700년대 초 오위사과를 지낸 이윤민(李允敏)이 현 앙성면 단암리의 땅을 사패지로 하사받아 정착했다.

[현황]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충주시에 거주하는 전의이씨는 2000년 기준 458가구에 1,366명으로 조사되었다. 세거지 별 분포는 1960년대 충주시 이류면 검단리 100여 가구, 신니면 문락리 130여 가구, 중앙탑면 하구암리 25가구, 앙성면 단암리 검단마을 40여 가구였으나, 2008년 현재 이류면 검단리 20여 가구, 신니면 문락리 38가구, 중앙탑면 하구암리 9가구, 앙성면 단암리 검단마을 15가구이다.

[관련유적]

이신효 묘, 이덕숭 묘, 이복숭 묘가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문락리 동락에 있고, 이징서 묘가 앙성면 단암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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