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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추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3052
한자 玉樞經
영어의미역 Okchugyeong Sutra
이칭/별칭 「옥추보경」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교현동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안상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경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교현동에서 독경을 하면 질병을 낫게 해준다는 무경(巫經).

[개설]

「옥추경」은 주문(呪文)과 부작(符作)을 함께 다루고 있는 축사(逐邪)의 무경이다. 독경(讀經)을 하면 질병을 낫게 해준다는 신앙 때문에 가장 많이 읽히는 민간도교의 경전으로 한국의 민간신앙과 꽤 밀착되고 있다. 무경을 설(說)한 뇌성보화천존(雷聲普化天尊)은, ‘말세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큰 서원을 세운 존재이며, 대자대비를 갖춘 모든 생명의 어버이요, 모든 생명력의 스승으로 인식되고 있는 신’이다. 따라서 무속은 물론 동학이나 증산교에서도 뇌성보화천존을 추존하여 적극 수용하고 있다.

[채록/수집상황]

「옥추경」 자료는 복사본으로 충청북도 농악 무형문화재 이수자 겸 충주국악협회 지부장인 전봉근(남, 1941년생, 충주시 교현1동 229-13[교동2길 18-1])이 소장하고 있다. 1976년 김영진이 집필하고 형설출판사에서 간행한 『충청도 무가』에 수록되어 있는 「옥추경」과 거의 동일하다.

[의의와 평가]

「옥추경」은 조선시대 전체에 걸쳐 가장 많이 읽힌 치병(治病) 경전으로 병굿이나 신굿과 같은 큰 굿에서 독송되었다. 원래 「옥추경」은 뇌법(雷法)이나 뇌의(雷儀) 등을 중심으로 도교 신소파(神霄派)의 중심 경전으로서 북송 무렵부터 부각되었다. 그리고 원말·명초에 이르러서는 민간에까지 광범위하게 유포된 듯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옥추경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유입·유포되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다만 『경국대전』에 “道類가 玉樞經을 讀誦하였다”는 기록을 통해, 즉 고려 말에 제기된 법률제정 사업에 기인하여 추측할 뿐이다.

조선조 세조 연간에 『경국대전』의 편찬을 시작한 이래 1484년(성종 15)에 완성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생각해 보면, 유·불·도가 무속과 공존을 연출했던 고려시대에 이미 옥추경이 존재했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에 기우제의 일환으로, “뇌성보화천존을 대상으로 삼아 초제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며, 조선 후기인 1733년에 일반 사찰인 보현사(普賢寺)에서 「옥추경」을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볼 때 「옥추경」은 고려시대에 유입되어 궁중으로부터 일반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신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옥추경」은 축사(逐邪)의 제일경(第一經)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정신병을 사귀(邪鬼)의 침입으로 간주했을 때, 그것을 치료하는데 있어 매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고 믿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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