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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동 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3269
한자 龍山洞遺蹟
영어의미역 Archeological Site of Chungju Yongsan-dong
이칭/별칭 충주 용산동 유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용산동 1665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길경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묘군
건립시기/연도 삼국시대~조선시대
면적 약 40,000㎡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용산동 1665
소유자 개인소유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용산동 아파트 신축부지에서 발굴 조사된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고묘 유적.

[개설]

충주 용산동 유적은 용산동 남동쪽의 금봉산(남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125~150m 내외의 완만한 구릉과 작은 골짜기가 남동-북서 방향으로 발달해 있는 곳이다. 주변에 충주산성(충청북도 기념물 제31호), 직동, 요갓골, 호암동, 단월동 고분군 등 크고 작은 고분군과 유물산포지가 확인되고 있어, 일찍부터 매장문화재의 존재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주리개발산업과 더존씨앤디에서는 용산동 일원에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기에 앞서 이 지역에 대한 문화재에 조사를 실시해야 하므로, 조사를 중앙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하였다.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생활유적과 고묘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4만㎡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하고, 유구를 중심으로 2005년 11월부터 2006년 1월에 걸쳐 약 4,900㎡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위치]

충주 용산동 유적은 충주 시내 중심부에서 남동쪽으로 약 2㎞ 가량 떨어진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는 충주의 주산이라고 하는 금봉산(남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하단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정상부에는 충주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충주 안림동 사거리에서 남쪽으로 형설로(螢雪路)를 따라 끝까지 가면 범바위 못 미처 우측으로 더 좋은 아파트가 건설되어 분양되었는데, 이곳이 충주 용산동 유적이다.

[형태]

조사 결과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목탄요 2기와 석곽묘 13기, 조선시대 토광묘 5기 등 모두 20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목탄요 2기는 모두 반지하식이었는데, 유구간의 중복과 삭평으로 인하여 상당 부분 유실되었다. 전체적인 구조와 특징을 확인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1호 목탄요와 2호 석곽묘의 중복관계로 보아 석곽묘 조성시기보다 앞선 유구로 보인다.

석곽묘는 13기가 발굴되었다. 바닥 처리와 축조 수법에 따라 시상이 설치되어 있는 형태(횡구식석곽), 시상 없이 바닥에 판상할석을 깔아서 마무리한 형태, 판상할석을 세워 쌓아 벽체를 구성하고 바닥은 생토면에 정지하여 그대로 사용한 것 등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토광묘는 5기가 확인되었는데 출토유물과 전체적인 구조 등으로 보아 조선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시기의 것으로 판단된다.

[현황]

충주시 금봉산 자락의 남동-북서사면에 위치한 경사지형에 조성되었던 유적이나 전체면적에 비해 집중도는 떨어진 편이었다.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완료한 후 보고서를 발간하였으나 유구는 보존가치가 없어 아파트 공사와 함께 사라졌다.

[의의와 평가]

목탄요는 4세기 전반에서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된 충주 뒷골유적의 목탄요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조성된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석곽묘의 출토유물 및 주변 유적 상황과 비교할 때 전체적으로 6세기 후반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기간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토광묘는 조선시대의 것들이다. 충주 지역에서는 많은 탄요나 고묘 가운데 하나로 취급될 수 있으나, 충주시내에서 확인되고 있고 금봉산의 북서사면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주목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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