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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서원기문후기 편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985
한자 硏經書院 記文後記 篇額
영어공식명칭 Yeongyeong-seowon Gimun Hugi Pyeonaek
이칭/별칭 서이대용기후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경상북도 경산시 진량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613년 11월 19일연표보기 - 연경서원기문후기 편액 제작
출토|발굴 시기/일시 2016년 4월 - 연경서원기문후기 편액 이숙량 후손가에서 발굴
현 소장처 이숙량 후손가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면
원소재지 연경서원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지도보기
출토|발견지 이숙량 후손가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면
성격 액자
재질 소나무
크기(높이,길이,너비) 높이 30㎝|길이 220㎝|두께 3㎝
소유자 이숙량 후손
관리자 이숙량 후손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 연경서원에 관하여 기록한 편액.

[개설]

연경서원기문후기 편액은 조선 후기에 대구 지역의 유학 교육에서 중추적인 구실을 담당하였던 연경서원에 관하여 기록한 편액이다. 대구 지역 최초의 서원이었던 연경서원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563년(명종 18)에 건립을 시작하여 1564년에 상량을 하고 1565년에 완공되었다. 2년 후 매암(梅巖) 이숙량(李叔樑)퇴계(退溪) 이황(李滉)에게 기문을 써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황은 자신에게 기문을 청하고자 기록한 이숙량의 글이 서원 건립에 관하여 자세히 잘 기록하였다고 하여 기문으로 삼게 하고, 자신은 기문후기를 써 주었다. 이 기문후기의 원제목은 「서이대용기후(書李大用記後)」인데, ‘대용(大用)’은 이숙량의 자(字)이니 ‘이숙량의 기문 뒤에 쓴다’라는 의미이다.

기문후기는 1567년(명종 22)에 이숙량이 지은 기문과 함께 편액으로 만들어져 강당에 걸렸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연경서원과 함께 불에 타 없어졌다. 대구의 유림들이 1602년(선조 35)에 서원을 중건하였고 1613년(광해군 5)에 서원의 사당을 지어 퇴계 이황을 봉안하였는데, 이때 기문과 기문후기를 다시 제작하였다. 이 일을 주관한 손처눌(孫處訥)『모당일기(慕堂日記)』 1613년 11월 19일에는 연경서원기문후기 편액의 제작을 비롯하여 연경서원의 여러 편액에 관련된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연경서원은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기문과 기문후기의 행방을 알 수 없었고 글의 내용만 『매암문집』과 『퇴계문집』에 수록되어 전하여 왔다. 그러던 중 연경서원기문 편액연경서원기문후기 편액이 2016년 4월에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면에 있는 이숙량의 후손가(後孫家)에서 발굴되었다. 제작한 지 403년, 훼철된 지 145년만이었다.

[형태]

연경서원기문후기 편액은 길이 220㎝, 높이 30㎝, 두께 3㎝의 소나무 판자에 글을 오목새김한 것이다.

[특징]

연경서원기문후기 편액에는 퇴계 이황의 서원관과 교육목표가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연경서원기문후기 편액이황이 전국의 여러 서원에 써 준 서원 기문 중에서 현존하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한, 연경서원기문 편액, 연경서원 이건기문 편액 등과 더불어, 2014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연경서원 중건 운동에 힘을 실어 주는 역사적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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