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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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儒敎 |
영어공식명칭 | Confucianism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병훈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누정, 서원, 사당 등을 중심으로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유교 문화.
[개설]
조선 시대 유교가 남긴 예컨대 충효와 같은 사상적 가치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 있으며 각 가정에서도 관례, 혼례, 상례, 제례 등으로 유교적 의례실천을 행하고 있다. 다만 각 가정의 구체적 유교문화에 대해서는 너무 다양하고 개별적이어서 종합적 서술에 부적절한 면이 있다. 따라서 동작구의 유교 문화에 대해 동작구에 있는 누정, 서원, 사당 등의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유교적 의례와 문화의 측면을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동작구의 누정]
효사정(孝思亭)은 우의정을 역임한 공숙공 노한(盧閈)의 별장으로, 한강 변에 자리잡고 있다. 노한은 1439년 어머니 개성왕씨대부인의 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侍墓)를 하였는데, 시묘를 마치고도 그 자리에 계속 머물렀다고 한다. 이후 묘의 북쪽 언덕 위에 별장을 짓고 오래도록 사모하는 정을 품었다고 한다. 노한의 아들 돈녕공이 강희맹의 아버지 강석덕에게 부탁하여 강석덕이 ‘효사정’이란 이름을 지었으며, 강희맹이 기문을 지었다. 정인지, 신숙주, 김수온, 서거정 등이 효사정에 대한 시문을 남긴 바 있다. 이렇듯 효의 상징이었던 효사정은 성종 때 헐렸으나 1993년 일제 강점기 때 한강신사가 있었던 자리에 새로 지어졌다. 2018년 6월 전망데크, 한강진입로 등을 만들어 효사정문학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조선 후기의 정자이다. 정조(正祖)는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부왕 장조(莊祖)의 원묘(園墓) 영우원(永祐園)이 협소함에 가슴 아파하여 1789년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로 천묘하고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다. 이 현륭원에 참배를 자주 다닐 때, 노들강[한강]에 배다리를 설치하여 건넌 뒤 휴식을 취했던 행궁이다. 현재 동작구에서는 용양봉저정을 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용양봉저정을 사적으로 지정하고, 2022년까지 전망대 등을 설치할 예정이라 한다.
[동작구의 서원]
민절서원(愍節書院)은 사육신을 배향하였던 서원으로 1681년 설립되었으며, 1692년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육신을 배향한 대표적인 서원이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현재는 터만 남아 있으며, 그 위에 사육신의 비가 세워져 있다.
노강서원(鷺江書院)은 동작구 본동의 가칠목마을에 본래 있었던 서원으로, 조선 숙종 때 문신인 박태보(朴泰輔)를 배향하던 곳이다. 박태보는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다 고문을 받고 진도로 귀양가는 도중 노량진에서 사망하게 된다. 숙종은 1695년 서원을 세워 박태보의 충절을 기리게 되며, 2년 뒤 ‘노강(鷺江)’이란 사액을 받았다. 이후 1754년에 중건되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 그 역할을 다해오다가 1925년 한강 대홍수로 중건하였으며,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해 소실되었다. 1969년 경기도 의정부시로 이전하였고,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충서원(四忠書院)은 경기도 과천[현재 동작구 노량진동]에 자리잡고 있었던 서원인데, 1725년(영조 1)에 김창집(金昌集), 이이명(李頤命), 이건명(李健命), 조태채(趙泰采)를 배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들 노론 4대신은 왕통문제와 관련하여 신임옥사(辛壬士禍)로 숙청되었다. 이후 영조가 즉위한 뒤 신원되고 서원이 세워지고 사액을 받았으나, 1727년 정미환국(丁未還局)으로 소론정권이 들어서자 서원도 철폐되었다. 이후 소론세력이 몰락한 1756년에 다시 세우게 되었는데 영조에게 충성을 다하였다 하여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도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이후 철도용지로 편입되어 고양군 한지면 보광동으로 이전했다가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 1968년 현재의 경기도 하남시로 이전·복원하였다.
[동작구의 사당]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목숨을 바친 소위 사육신을 모신 사육신공원(死六臣公園)은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다. 사육신은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유응부(兪應孚), 하위지(河緯地), 류성원(柳誠源)을 말한다.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숙종 대에 사육신의 충절이 인정을 받게 되어 사육신의 사우로 민절서원(愍節書院)이 세워져 사액(賜額) 되었으나, 이후 대원군 때 철폐되었다. 이후 1782년(정조 6) 유명조선국육신묘비(有明朝鮮國六臣墓碑)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김태선 서울시장이 사육신지묘비(死六臣之墓碑)를 세우고 일대를 정비하였다. 이후 1977년 5월 사육신 묘소의 성역화 사업을 시작하였고, 1978년 5월 공사가 준공되었다. 이를 통해 하위지, 류성원, 김문기의 가묘가 만들어졌으며, 위패를 모신 사당인 의절사와 사무실 등의 시설이 갖춰져 공원으로 꾸며지게 되었다. 사육신현창회에서 1961년부터 매년 사육신에 대한 제향을 유교식으로 봉행하고 있으며, 1997년에는 동작구의 상징적 지역 전통문화사업으로 특화되어 백일장 등의 여러 행사와 함께 치뤄지며 사육신의 충절 의식을 본받도록 하고 있다.
양녕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 묘역(墓域)은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데, 1972년 8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양녕대군은 태종의 장남으로 세자에 책립되었으나 폐위된 후 충녕대군[세종]이 세자가 되어 왕위에 오르게 된다. 양녕대군은 일생동안 세종과 우애를 돈독히 하였으며 풍류를 즐기면서 천수를 누렸다. 1675년(숙종 1) 허목이 사당을 세우고 자손을 등용할 것을 아뢰어 남대문 밖에 지덕사를 세우게 되었다. 1737년(영조 13) 사액(賜額)하려 하였으나 전례가 없음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 1789년(정조 13) 사액이 이루어졌고, ‘어제지덕사기(御製至德祠記)’를 내렸다. 이후 여러 차례 지덕사의 보수가 이뤄졌는데, 1912년 일제의 횡포로 인해 현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2000년 이후 문화재 보호 및 관리를 위해 출입을 제한하였으나, 2018년에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되었다.
[동작구의 유교문화 계승 노력]
앞서 살펴본 누정, 서원, 사당 등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동작구가 충효의 고장이라 불릴 만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일곱가지 동작이야기 길’이라는 테마로 총 26㎞의 동작충효길을 조성하였는데, 효사정, 용양봉저정, 사육신공원, 지덕사 등을 걸으며 만끽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한편으로 충효축제, 사육신 추모대제 등의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축제를 통해 유교적 가치를 계속해서 선양하며 살아 있는 문화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