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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1176
한자 政治
영어의미역 Politics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연화준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개설]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 사회에는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하여 항상 희소 자원의 획득과 배분을 둘러싼 대립이나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대립이나 투쟁을 조정하여 통일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정치라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며, 정치는 주로 국가나 정부라는 제도적인 권력 장치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정치는 좁게는 국가 권력에 의해 수행되는 일련의 통치 행위이며, 넓게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공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국가 권력의 획득·유지·행사를 둘러싼 제 집단 간의 투쟁이나 조정 과정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근대 이후 충청북도 음성군 정치의 경우 갑오경장 이후부터 일제강점기를 포함하는 시기에는 주로 국가 기구에 의한 강압적인 통치와 이에 대한 지역민들의 저항을 중심으로 그리고 해방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주로 국가 기구에 파견할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조선 말기]

조선 말기 갑오경장 이후에 처음으로 왕실과 정부를 분리하는 국가 체제가 형성되면서 지방제도도 새롭게 정비되었다. 이전의 전국 8도의 행정 체계가 13도로 개편됨과 더불어 충청도가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로 분리되었다. 또한 이전의 모든 군·현이 군(郡)으로 일원화되면서 음성 지역은 충주관찰부가 지휘하는 음성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 음성군의 정치는 행정책임자인 군수의 통치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1910년 이후 일제강점기의 정치는 일제의 강압적 통치와 이에 대항하는 항쟁으로 특징 지워진다. 이 시기는 전국적인 범위에서 일본의 강압적인 식민 통치에 대항하는 민족 투쟁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던 대일 항쟁 시기로서 충청북도 음성에서도 만세운동 등 크고 작은 민족 투쟁이 있었다. 1919년 3월 28일 읍내시장에서 서당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 운동이 일어났으며 같은 해 4월 1일에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한천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나 일본군과 충돌하였다.

이을경(李乙卿)과 이중곤(李重坤)이 주도해서 모인 시위대가 주재소를 포위하는 등 일경과 맞서 투석전을 벌였으나 충주에서 파견된 일본군의 무차별 난사로 12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을 당하는 큰 희생을 입었다. 다음 날인 4월 2일에는 삼성면 천평 바갈미에서도 시위가 일어나 일본 경찰과 충돌하여 일경 한명이 부상당하는 일이 발생하였으며 충청북도 음성군 전역에서 계속해서 시위가 일어났다.

1920년대 이후로 일제에 대항하는 민족 운동은 크게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분리되어 전개되었으며, 이러한 양상은 음성군에서도 동일하였다. 일제는 이들 모두에 대해 일방적인 탄압을 자행하였다. 우파의 세력이 커지고 민족의식이 고양되면 민족주의 계열의 움직임을 탄압하였고, 좌파의 활동이 농민 조직으로 파고들면 공산당 인맥을 체포하여 구속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전국적으로 창씨개명과 강제 징병 및 징용이 자행되어 음성군민도 예외 없이 고통을 당하였다.

[현대]

해방 이후 한국에서는 국민의 투입 욕구 폭발과 좌우 대립 등 본격적인 정치 활동이 전개되었으나 음성 지역에서는 그렇게 활발한 편이 아니었다. 이 시점부터 음성 지역의 정치 활동은 주로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선거기간을 제외한 시기에는 미미하였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기초하기 위한 제헌의원선거에서 음성군의 제헌의원 후보로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이의상과 무소속의 김세권 2명이 입후보하였다. 선거 결과는 이의상 후보가 29,966표를 획득하여 7,634표 획득에 그친 김세권 후보를 누르고 제헌의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의 이학림이 당선되었으며,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이학림이 자유당으로 출마하여 재선되었다.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김주묵이 당선되었다.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사회대중당의 신창균, 민주당의 구철회, 자유법조단의 김홍관 등 13명의 후보가 입후보하여 무소속의 이정석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정석이 ‘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에 의한 의원 자격 상실로 무소속의 정인소가 당선되었으나 5·16 군사정변으로 국회가 해산됨으로써 국회에 등원하지는 못하였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정당의 이충환이,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오원선이,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이정석이 각각 당선되었다. 그리고 충청북도 음성군과 진천군이 하나의 선거구로 통합된 중선구제 하에서 실시된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김원태와 신민당의 이충환이,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오용운과 신민당의 이충환이 각각 당선되었다.

또한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의 안갑준과 한국국민당의 김완태가,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의 김종호와 한국국민당의 김완태가 각각 당선되었다. 이후 다시 소선거구제 하에서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의 김완태가 당선되었으나, 임기 중 병사함에 따라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허탁이 당선되었다. 그리고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의 민태구가, 제15대 및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민주연합의 정우택이, 제17대 및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김종률이 각각 당선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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