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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사람들만을 기억해왔다. 하지만 이들 세 명에 의해 주도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들과 함께 했던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동학농민혁명은 가능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전봉준과 함께했던 이름 없는 농민군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를 뿐 아주 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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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뫼봉은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에 있는 왕제산의 다른 이름이다.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의 현장인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서 직선거리로 약 1㎞ 가량 떨어진 이곳은 높이가 152m에 불과한 야트막한 산이지만, 사방이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에 서해안의 물길을 바라볼 수 있다. 또한, 내륙으로부터 들어오는 관군의 움직임을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무장기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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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에서 출발하여 구암중앙교회를 지나면 길 건너에 석교리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석교리’라고 쓰여 있는 크고 굵은 글씨와 그 아래 ‘동촌, 창촌’이라 쓰여 있는 표지석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큰 마을이 나온다. 마을 인가를 몇 채 지나면 커다란 당산나무를 볼 수 있는데, 운치 있는 나무를 보면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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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3월 20일을 전후해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서는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기념제’가 열린다.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기념제는 동학농민혁명의 무장기포를 기념하는 행사로서, 올해[2009년]는 4월 25일에 기념제가 열렸다. 전날까지도 아주 따뜻한 봄날이었는데, 25일 오전부터 날씨가 굉장히 쌀쌀해져서 구수마을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에 도착했을 때는 차가운 바람과 검은 구름이 하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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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음면 구암리 장동마을 안길로 들어가면 하얀 조립식 주택과 흙벽으로 만들어진 창고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왼편에 대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이 대나무밭 뒤편에 개간된 밭이 옛 ‘송총’이다. 지금은 흔적마저 사라져 버린 ‘송총’의 주인은 누구일까? 송총의 주인은 바로 송문수이다. 송문수(宋文洙)[?~1894. 12. 5]는 무장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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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은 고부 농민 봉기가 도화선이 되어 일어났다. 고부에는 조선 후기부터 왕실 소유의 토지가 몰려 있었는데, 이를 관리하는 관리의 비리와 조세 운반을 맡은 전운사 조필영의 강제적인 세금 징수, 그리고 지역 관리의 비리 등으로 이 지역 농민들은 관리들에 대한 불만과 국가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1892년 4월 부임한 고부군수 조병갑의 포악하고 가혹한 정치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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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기포는 1894년 3월 15일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되었다. 당시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리[현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는 수천 명의 동학 농민군이 모였는데, 이들은 죽창을 만들고 무기와 식량을 확보한 뒤 대오를 정비하였다. 준비를 마친 이들은 마침내 3월 20일 이곳에서 창의문을 낭독하고 기포하였다. 무장기포 직전 무장현 일대는 동학의 교세가 대단히 컸다. 동학의 교세는 전라도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