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648 |
---|---|
한자 | 白坡集 |
영어음역 | Baekpajip |
영어의미역 | Collected Works of Baekpa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원철 |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승려 이긍선(李亘璇)의 문집.
[개설]
이긍선[1767~1852]은 조선 후기 백파대사(白坡大師)라고 불린 승려이자 학자이다. 중종의 아들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10세손 이종환(李宗換)[1729~1795]의 아들로 전라도 무장현[현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 17세까지 선운사에서 과거 공부에 몰두하다 18세 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운사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스승 설파상언(雪坡尙彦)의 가르침을 받아 불법을 크게 깨달았으며, 26세에 백양사에서 강원(講院)을 열자 많은 승려들이 모여들어 배웠다. 49세에는 다시 정읍의 용문동에 들어가 참선에 정진하고 장성의 백양사와 순창의 구암사 등에 머물며 선교결사회(禪敎結社會)를 조직하여 선(禪)과 교(敎)를 함께 닦아 실천하면서 불도(佛道)에 관한 저술 활동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긍선은 특히 당대의 문신·유학자들과도 교유가 잦았으며, 이로 인해 그들과 수창(酬唱)한 시문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저서로 『선문수경(禪門手鏡)』, 『구감(龜鑑)』,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 『법보단경요해(法寶壇經要解)』, 『오종강요기(五宗綱要記)』, 『금강팔해경(金剛八解經)』, 『선요기(禪要記)』, 『선문염송기(禪門拈頌記)』 등이 있다.
[편찬/발간 경위]
현재 『백파집(白坡集)』이 전해 오지 않으므로 편찬과 발간 경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으나, 앞서 거론한 불교 관련 저술과 문신·유학자들과의 수창 시문을 엮어 『백파집』이라 이름 붙여 사후에 출간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성/내용]
『백파집』이 전해 오지 않으므로 구성과 내용을 알 수 없으나 당대 문신·유학자들이 이긍선의 많은 불교 관련 저술과는 별도로 『백파집』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시문들을 따로 묶어 문집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긍선은 또한 자신의 생부(生父)인 송계(松溪) 이종환의 효행을 기려 『송계효행록(松溪孝行錄)』을 엮은 적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연천거사 김이양(金履陽)[1755~1845]은 「송계이공효행록서」를 썼고, 참봉 홍재혁(洪在爀)은 「제송계행록후(題松溪行錄後)」를, 해거(海居) 홍현주(洪顯周)는 묘지명(墓誌銘)을,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1774~1842]는 「송계이효자록서(松溪李孝子錄序)」를 썼다.
그 밖에 참봉 홍재혁과는 서신을 통해 유불(儒佛)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이긍선의 사후 평소 친분이 있던 추사 김정희가 백파대율사비(白坡大律師碑) 비문를 지었으며, 또한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1755~1831]과도 교유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들과 주고받은 시문(詩文)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곧 이때의 글들을 엮은 것이 『백파집』이라고 여겨진다.
[의의와 평가]
만일 『백파집』이 전해 온다면 조선 후기 승려의 문학 유산을 확보할 수 있다는 데서 일정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실전(失傳)된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