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6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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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陽吳氏 |
영어음역 | Hamnyang Ossi |
영어의미역 | Hamnyang 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집필자 | 송만오 |
세거지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성산리|아산면 남산리|심원면 연화리|성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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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
입향시기/연도 | 1500년대 |
성씨시조 | 오광휘 |
입향시조 | 오세영|오구 |
[정의]
오광휘를 시조로 하고 오세영·오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연원]
함양오씨는 함양부원군 오광휘(吳光輝)를 시조로 한다. 입향조인 오세영(吳世英)의 손자 오익창은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을 도와 전공을 세워 임난공신으로 녹훈(錄勳)되었고, 오익창(吳益昌)의 아들 오전(吳晪)은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을 지냈으며, 이괄(李适)의 난과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공을 세우고 효성이 지극하여 고창군 아산면 성산리 죽산사(竹山祠)에 배향되었다.
오구(吳球)의 큰아들 오명량(吳命良)은 춘천부사(春川府使)를 지냈고, 작은 아들 오명란(吳命鸞)은 이괄의 난이 일어나 전세가 화급하자 인조를 업고 서울을 떠나 오금리에 이르러서야 쉬면서 “아이고 오금이야.” 하였으므로 마을 이름이 오금리(梧琴里)가 되었다는 이른바 ‘오금리 전설’의 주인공이다.
[입향경위]
함양오씨 고창군 입향조인 오세영은 함양부원군 오광휘의 10대손이자 참판공(叅判公) 수심재(修心齋) 오치선(吳致善)의 현손으로 1487년(성종 18) 서울에서 태어났다. 19세에 연산군의 난정(亂政)을 목격하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관을 모시고 외가가 있는 고창군 대산면 연동리 장동으로 내려와 정착하였다. 오구는 오치선의 동생인 정랑공(正郞公) 오치행(吳致行)의 현손이자 남원군 오응(吳凝)의 증손으로 남원에서 살다가 고수면으로 옮겨 와 정착하였다.
[현황]
2009년 현재 오세영의 후손들이 아산면 성산리 죽산, 아산면 남산리, 성송면 양곡, 심원면 연화리 등지에 살고 있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고창군에 살고 있는 함양오씨는 총 93가구에 226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