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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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元男 |
영어음역 | Yi Wonnam |
이칭/별칭 | 효건(效乾),오은(梧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재영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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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
성별 | 남 |
생년 | 1588년 |
몰년 | 1636년 |
본관 | 전주 |
대표관직 | 사옹원봉사 |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효건(效乾), 호는 오은(梧隱). 조선 태종의 다섯째 아들 경녕군(敬寧君) 이비(李示+非)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이기수(李琪樹)이다.
[활동사항]
이원남(李元男)은 1588년(선조 21)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어버이에 대한 효도와 동기에 대한 우애가 극진했다. 일찍이 스스로 『소학(小學)』을 깨쳤다. 장성해서는 경서의 뜻에 통달했고, 부모의 초상 때는 예제(禮制)를 지키며 날마다 세 번 곡하며 가슴을 치고 슬피 울었는데, 그 처소의 풀이 말라 죽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그의 깊은 효성을 칭송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 호소사(號召使)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집하자 이에 응하여, 일가인 이기문(李起文)과 함께 동지를 규합하여 의병과 군량을 모집하였다. 그 공으로 후에 사옹원참봉(司饔院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636년(인조 14) 다시 의병을 일으켰으나 다음 해 정월 왕이 화친을 했다는 소식에 통탄하고 임천(林泉)에 은거하여 시문으로 일생을 보냈다. 후손이 고창군 성내면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