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8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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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興燮 |
영어음역 | Gim Heungseop |
이칭/별칭 | 흥관(興寬),영암(榮庵)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문병학 |
성격 |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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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 |
성별 | 남 |
생년 | 1874년 |
몰년 | 1965년 |
본관 | 김해 |
[정의]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영암(榮庵), 본명은 흥관(興寬)이다. 187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성칠(金聲七)이다.
[활동사항]
김흥섭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김성칠과 함께 동학에 입교(入敎)해 활동하였다. 김성칠은 1893년 12월, 전봉준(全琫準)·손화중(孫化仲)·정백현(鄭白賢) 등과 함께 송문수(宋文洙)의 집에서 기포에 관한 모의를 한 뒤, 1894년 2월에는 신촌리 자신의 집에서 전봉준 외에 김개남(金開南), 서인주(徐仁周), 김덕명(金德明), 임천서(林天瑞), 강경중(姜敬重), 고영숙(高永叔) 등이 참여한 가운데 기포를 구체화하였다. 김성칠은 당시 쌀 50가마를 내놓는 등 활동에 필요한 식량을 조달하였으며, 3월 20일 무장 기포에 이어 9월의 재기포에도 출진하였다.
김흥섭은 무장 기포 이전부터 전주화약(全州和約)에 이르기까지 전봉준의 경호와 비서의 책무를 도맡아 초기 동학 농민 혁명을 이끌었다. 전주에서의 집강 정치가 시작되면서 아버지 김성칠이 무장 집강소를 맡자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사를 돌보았다. 우금치 전투 후 부안의 변산으로 도피했고,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서당을 열어 생계를 이어 갔다. 문장에도 뛰어나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고 하나 전하는 것은 없다. 1965년에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