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171 |
---|---|
한자 | 雲禪庵 |
영어음역 | Unseonam |
영어의미역 | Unseonam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계당리 산 27 |
집필자 | 배옥영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계당리에 있는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
[건립경위 및 변천]
운선암(雲禪庵)에 대한 문헌 기록을 찾아볼 수 없어 정확한 연혁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있는 암자가 있기 이전에 고려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절터의 미륵불이 있던 자리에 100여 년 전 정주원(鄭柱元)이 미륵불을 짓고 모셨다. 운선암이 6·25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53년 13평 규모의 법당과 8평 규모의 요사채를 짓고, 1977년 5월 17일 한국불교 태고종으로 등록하였다. 운선암 경내에 있는 불상들이나 석조 유물을 백제 시대까지 소급할 수는 없으나 암자로 지어지기 훨씬 오래전에 이미 절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현재는 승려 혜인이 주지로 있다. 법당 내에 주불로 모셔져 있는 석불입상에는 광배가 없으며, 앞면에 하얀 칠을 하여서 원상이 훼손되었다. 머리는 장방형에 가까운데, 귀 부분이 옆으로 돌출되어 있는 형태이다. 육계는 없으며, 머리 정수리 부분이 평평하여 백호공도 없다. 가늘게 뜬 눈에 위쪽 눈썹이 뚜렷하여 눈이 큰 것처럼 보인다. 코는 오뚝하여 전면적으로 입체감이 없는 불상의 상호에 입체감을 주었는데, 코의 폭이 좁은 편이다.
입은 굳게 다문 형태이고 인중선도 없어 극히 무표정한 모습을 보인다. 귀는 눈썹 위쪽에서 입이 있는 곳까지 이어지고 비교적 길고 크게 표현되었다. 목이 짧아서 삼도가 없이 곧바로 몸체에 달라붙어 있으며, 어깨는 얼굴과 같은 폭으로 옆으로 넓어지지 않고 거의 그대로 다리 쪽으로 약간 좁아지며 이어지고 있다. 두 손은 가슴 부분에서 모으고 있으며, 옷은 통견으로 보이는데 양팔이 몸에 붙어 있는 형태를 보이며, 신체의 세부와 옷을 표현한 선이 극히 얕게 음각되어 있어 분명하지 않다.
전체적으로는 대단히 간략하고 형식화되어 있으며, 코를 제외하고 평면적인 처리를 함으로써 불상의 입체감을 느낄 수 없다. 불상의 전체적인 양식은 불상이라기보다는 장승을 보는 듯한 형태이며,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련문화재]
운선암 뒤쪽 야산을 100m 정도 걸어 올라가면 넓은 들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모든 중생을 자비로 지키는 듯한 표정으로 마애여래상이 새겨진 거대한 자연 암석이 있다. 고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운선암 마애여래상은 높이 720㎝, 몸 길이 230㎝, 머리 길이 51㎝, 대좌 높이 40㎝, 대좌 폭 113㎝이다.
또 운선암 왼쪽 뒤편으로 난 돌계단 입구에 화강암 재질의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통견의 법의에 수인은 시무외인 여원인이다. 삼도는 희미하나 오막조막 고운 얼굴은 고려 시대 사람들의 정겨운 얼굴을 대하는 듯하다. 그 계단을 따라 100여m 올라가면 왼쪽 자연 암벽에 마애여래좌상이 위치해 있다. 커다란 자연 암벽에 자연스러운 선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이 바위는 가로로 크게 균열이 나 있는데, 이것이 마애여래좌상을 새길 때부터 갈라진 것인지, 훗날 갈라진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마애여래좌상의 배광을 갈라서 지나가고 있다. 만든 시기는 고려 시대로 추정되며, 총 높이는 233㎝, 몸 길이는 155㎝, 머리 길이는 56㎝, 광대 폭은 195㎝이다.
연꽃 받침대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이 마애여래좌상은 고려 시대 마애불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부처의 몸이나 받침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는 머리 뒤의 장식인 광배 등 모두를 선으로만 처리하였다. 특히 불상의 발가락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마치 돌에 새긴 것이 아니라 흙에 새긴 듯이 자연스러워서 마애불이 갖는 한계점을 극복하였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손바닥은 바깥쪽으로 향하였으며, 모든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려는 듯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 불상은 고려 시대에 유행하던 선각 마애불의 형식을 그대로 취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운선암을 중심에 놓고 주변에 마애여래입상과 마애여래좌상이 있는데, 마애여래입상은 자연 암벽에 고부조로 처리되어 있으며, 오른손에 보주형의 문양이 새겨져 있어 약사불로 추정된다. 머리는 소발로 커다란 육계가 고부조로 처리되어있으며, 얼굴은 갸름한 편으로서 이마 가운데에는 백호공이 표현되어 있다. 코는 끝부분이 파손되어 본래의 형상을 알아볼 수는 없으나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고 있으며, 꽉 다문 입은 얼굴의 크기에 비하여 작은 것이 특징이다.
마애여래입상에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아름다운 규수가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몹시 아팠는데 아버지의 병환이 완쾌되기를 비는 100일 기도를 운선암에서 하게 되었다. 나가던 떠돌이가 운선암에 와서 절의 잡일을 맡아 하고, 주지 시봉을 하면서 잠시 머물었는데 규수가 새벽에 목욕하는 소리를 듣고 떠돌이 사내는 주지가 없는 틈을 타서 조심스럽게 규수의 뒤로 다가가서 가슴을 더듬었다. 규수는 정혼자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100일 기도를 마치지 못하였다. 규수는 그날의 일로 자신의 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죽었다고 한다.
주지는 자초지종을 듣고 규수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서 절의 뒤편 큰 바위에 여인의 상을 조각했는데, 조각을 다 완성하자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끼더니 천둥과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벼락이 조각의 한쪽 가슴에 떨어져 그때부터 조각에서는 피가 흘렀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여인상의 상처 난 가슴에서는 피가 흐른 자국처럼 붉은 물이 어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운선암 마애여래상은 2000년 6월 23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