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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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山壇 |
영어음역 | Deoksandan |
영어의미역 | Deoksandan Shrine |
이칭/별칭 | 정덕단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강남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범호 |
성격 | 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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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1955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강남리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강남리에 있는 유창, 유한량을 향사(享祀)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
[개설]
덕산단은 1955년에 유창(劉敞), 유한량(劉漢良)을 향사(享祀)하기 위하여 단(壇)을 설치하여 정덕단(鼎德壇)이라고 하였다가, 1970년에 유림의 결의에 의하여 덕산단으로 개칭하였다. 유창은 조선 전기의 개국공신으로, 본관은 강릉이고, 초명은 경(敬), 자는 맹의(孟義), 호는 선암(仙庵)이다. 아버지는 지군사천봉(知郡事天鳳)이다. 1371년(공민왕 20)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학유(成均學諭), 박사(博士), 문하주서(門下注書) 등을 지냈다.
우왕 때 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 전공좌랑(典工佐郞), 예의정랑(禮儀正郞), 군부정랑(軍簿正郞)을, 공양왕 때에는 성균사예(成均司藝), 호조의랑(戶曹議郞), 성균좨주[成均祭酒] 등을 역임했다. 일찍부터 이성계와 절친하여 그에게 경사(經史)를 강론했으며, 1392년(태조 1)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 2등으로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그 뒤 좌산기상시, 중추원좌부승지를 거쳐 1394년(태조 3) 중추원부사를 지내고, 옥성군(玉城君)에 봉해졌으며, 첨서중추원사가 되었다.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왕자들 간에 싸움이 일어나 결국 이방원이 즉위하자 1401년(태종 1) 소요산(消遙山)으로 들어간 태조를 찾아가 귀경을 권유했다. 예문관대제학, 세자우부빈객 등을 거쳐 1408년(태종 8)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로 있을 때 태조가 죽자 수묘관(守墓官)이 되어 3년간 시묘했다. 이후 길주도찰리사(吉州道察理使),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 세자이사(世子貳師)를 지낸 뒤 1416년(태종 16)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진봉되었으며, 1421년(세종 3)에 궤장(几杖)을 받았다. 저서에 『선암집(仙庵集)』이 있다.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유한량은 임진왜란 때에 창의한 선비로, 자는 충겸(忠謙), 호는 은재(隱齋)이고 본관은 강릉으로, 한양에서 출생하였다.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선조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무장현감(茂長縣監) 등을 지내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하여 진주성에서 왜적과 교전하다가 순절하였다.
[위치]
덕산단은 강남리 덕산마을 안으로 들어가 마을회관 앞을 지나면 서쪽 마을 끝인 덕산 아래에 있다
[변천]
1955년에 처음으로 단을 설치하여 정덕단(鼎德壇)이라고 하였다가, 1970년에 덕산단으로 개칭하면서 중·개수를 거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