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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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砂齋 |
영어음역 | Jangsajae |
영어의미역 | Jangsajae Shri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 하장마을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황금희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 하장마을에 있는 김안절의 위패를 모신 개항기 사당.
[개설]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 하장마을은 상산김씨(商山金氏) 집성촌으로 현재 19가구가 살고 있으며 인근 면소재지 등지에 거주하는 수를 합하면 50여 호에 달한다. 하장마을에는 제각이 두 군데 있는데, 그중 하장리 하장마을 장사재(長砂齋)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6일에 상산김씨 후손들이 시제를 지낸다. 사헌(沙軒) 김안절(金安節)은 고려 말기 중국 사신으로 활약했으며 양성현감을 역임하고 당시 중국 천자로부터 보물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하사받은 유물로는 옥으로 만든 술잔[玉杯] 한 쌍과 진귀한 벼루[寶硯] 한 개, 그리고 서적 4질이 있다. 서적을 제외한 두 가지 보물은 현재 자손이 대를 이어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상산김씨는 모두 11개 파가 있는데 김안절이 바로 하장마을 김씨들의 파조이며, 최영 장군의 사위라고 한다.
[위치]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 장사산(長砂山)은 하장마을의 뒷산으로 산기슭에 대지 600평, 건평 25평 규모의 일자형 기와집이 한 채 있는데 이곳이 장사재이다.
[변천]
장사재가 건립된 구체적인 연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구술 자료에 의하면 개항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1947년~1948년에 상량문을 안쪽으로 넣었고, 개수하면서 마루같은 것이 없어졌다.
[형태]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덤벙주초 위에 둥근기둥을 세웠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내부에 제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사헌 김안절선생(沙軒金安節先生)’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1기 있다. 장사재 동쪽에는 김안절의 묘지가 있다.
[현황]
매년 음력 10월 16일 오전 오시(午時)에 자손들이 모여서 시제를 지내는데, 제관은 연장자와 종손이 담당한다. 시제를 모시기 전에 근신하고 목욕을 한다. 제의 절차는 율곡 선생의 제의 집행 절차에 따라 행하며 제수(祭需)도 제례법에 의거하여 마련하는데 모두 생식이다. 시제가 끝나면 자손들이 다 같이 음복을 하고, 문중 회의를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사재에서 제수를 준비하고 먹고, 멀리서 온 사람들은 자고 가기도 해서 수위(守衛)하는 사람이 상주하였는데, 마을회관이 생긴 이후에는 마을회관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가지고 올라오고 마을회관에서 먹고 제사도 묘 앞에서 지내고 차를 타고 당일에 돌아가기 때문에 장사재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제일에 비가 오거나 하면 실내에서 지낼 때나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묘지는 관리가 잘 되어 있는 반면, 장사재는 문창호도 바르지 않고 구멍이 나 있으며 서쪽에 있는 관리인이 살던 건물도 비어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지붕이 낡아 3년 전에 금속기와를 얹었다.
장사재를 올라가기 전 마을 뒤편에 사당이 하나 더 있다. ‘상산김씨육위사단비(商山金氏六位祀壇碑)’가 서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전면에 4개의 원기둥 뒤로 5기의 비석이 보인다. 특이한 것은 이 건물은 전면에 문을 달지 않은 개방형 구조라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양력 10월 3일에 시제를 지내는데 장사재에서 지내는 시제보다 규모도 크고 참여 인원도 더 많다고 한다. 차이점이라면 생식이 아닌 숙식을 준비한다는 점이다.
[의의와 평가]
근래에 집성촌이 보기 드문 편인데 하장마을은 전체 가구가 모두 상산김씨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조상 제례를 중시해 마을에 두 곳의 오래된 사당이 존재하며 매년 시제를 융성하게 지내고 있다. 참여 인원이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도 70~80명 정도 된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