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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유리의 장군바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690
한자 群儒里-將軍-
영어음역 Gunnyu-riui Janggunbawi
영어의미역 Janggun Rock of Gunnyu-ri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
집필자 최기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암석 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도승|유효원|홍경래|정치규|장군|군병
관련지명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
모티프 유형 말발굽 자국이 새겨진 장군바위|군병이 변한 장군바위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에서 장군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군유리의 장군바위」고창군 공음면 군유리에서 북쪽으로 약 2㎞ 지점 야산 능선에 있는 바위와 관련된 암석 유래담이다. 군유리 북쪽에는 크고 작은 여러 바위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바위가 장군바위다. 이 바위 속에는 위대한 장군이 들어 있어 나라가 어려울 때 장군과 그의 병사들이 바위에서 나와 나라를 평정하고 다시 바위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811년 홍경래(洪景來)[1771~1812]의 난이 일어났을 때, 당시 동원부장인 정치규가 순무중군 유효원(柳孝源)[1751~1813]의 명을 받아 이 근처에서 병사를 훈련시켰다고 하여 영군바위라고도 한다.

[채록/수집상황]

1987년 고창교육청에서 간행한 『고창의 얼』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주민 허정선[당시 58]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고창군 문화관광 홈페이지(http://culture.gochang.go.kr/)에도 실려 있는데, 도승이 ‘이름 모를 나그네’로, 거인 장수가 ‘신체 건강한 청년 한 명’으로 각각 바뀌었다.

[내용]

장군바위에 얽힌 전설은 두 가지이다. 옛날 어느 무더운 여름날 공음면 군유리 북쪽 바위 근처 노송 아래에서 한 도승이 더위를 피해 잠이 들었는데, 어디선가 거인과 같은 건장한 체구의 장군 한 명이 흰 말을 타고 달려와 큰 바위의 문을 열고 바위 속으로 사라졌다. 놀란 도승이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바위 위에 방금 지나간 듯이 말발굽 자국이 나 있었고, 큰 바위 앞에 사각형 모양의 큰 문틀과 문틈이 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도승은 바위의 문을 열 수 없었다. 도승은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내려와 근처 마을 촌로에게 이 기이한 사실을 알리고 어디론가 떠났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바위를 주위 깊게 살펴보곤 했는데, 세상이 어지럽고 시끄러워질 때면 바위 속에서 군대를 호령하고 훈련하는 소리가 역력히 들려오곤 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에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고, 바위 속에는 웅장한 병영과 정예군을 거느리고 있는 훌륭한 장군이 있을 것이라 믿어 왔으며, 이 바위를 그들의 수호신처럼 여겨 왔다. 지금도 바위에는 말굽 자국이 있으며, 옆에는 쪽문만한 문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 다른 이야기는 1811년 홍경래의 난과 관련이 있다. 당시 동원부장인 정치규가 순무중군 유효원의 명을 받아 이 근처에서 군병을 훈련시켰다는 내용과, 정치규가 홍경래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군병을 이끌고 순무중군 유효원의 막사로 가다가 난이 토벌되었다는 말을 듣고 군병을 해산했는데 그 군병이 바위로 변해 장군바위가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모티프 분석]

「군유리의 장군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말발굽 자국이 새겨진 장군바위’, ‘군병이 변한 장군바위’ 등이다. 일찍이 큰 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끝도 없이 많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산재한 공음면장군바위도 마찬가지이다. 장군바위 전설은 큰 인물에 대한 탄생을 기원하는 설화이다. 특히 공음면은 동학 농민혁명 발상지이기도 하지만, 장군바위 속 장군이 어느 시점엔가 나와서 국난을 해결하는 바위 전설은 보이지 않는다. 국가의 위기에 휩쓸리지 않고자 하는 마음, 서둘러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바람, 공음면의 누군가가 국가에 큰 공을 세우고자 하는 바람 등이 이 바위에 담겨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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