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3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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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庾信 將軍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숙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20년 6월 12일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 사신원마을 주민 김선철[남, 70대]에게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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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풍수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김유신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 사신원마을에서 신라 김유신 장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계산리 사신원(四信院)마을은 옛날 공적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된 사신들이 묵었던 숙박 시설인 사신원이 있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사신원은 무장현에 있던 원(院)으로 사신들이 이곳에서 머물며 인천강[주진천]을 건너다녔다고 한다. 「할매바위 오은굴과 김유신 장군」은 신라 김유신 장군이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 사신원에 머물게 되었는데, 마침 지관을 만나 덕담을 나누고 수양이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인근 할매바위 오은굴에서 수행을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할매바위 오은굴과 김유신 장군」은 2020년 6월 12일 계산리 사신원마을 주민 김선철[남, 70대]에게서 채록하였다.
[내용]
김유신 장군이 젊은 시절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배를 이용하여 신라로 돌아가던 길에 바다에서 풍랑을 맞았다. 김유신 장군은 풍랑을 피하고자 뱃머리를 돌려 좌치나루에서 인천강[주진천]을 따라 올라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 사신원에서 묵게 되었다.
며칠 동안 사신원에서 묵고 신라로 돌아가던 길에 김유신 장군은 묘를 쓰고 있는 지관을 만나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김유신 장군은 지관에게 “이곳은 갈증 난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이요.”라고 하였다. 그러자 백발의 지관이 “젊은이 경솔하구만.” 하면서 “여기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 보시오.” 라고 하였다. 김유신 장군이 지관의 말에 귀를 땅에 대자 물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지관이 “이곳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은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이 아니라 물을 찾는 형국이라오.” 하고 말하였다. 면박을 당한 김유신은 창피하여 신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할매바위 오은굴에서 3개월 동안 수행을 하고 떠났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계산리 사신원마을 인근 백학산에서 사근재를 지나면 천안 전씨 묘가 있다. 이 묘는 말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연화봉[134.8m]을 중심으로 오른쪽 봉우리[123.6m]와 왼쪽 봉우리[125.3m]가 말의 눈과 같은 형국으로. 갈증이 난 말이 인천강에서 물을 마시는 모습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