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정월에는 설과 보름을 쇠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B010202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자현

[차례 모시기와 뱀맥이]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에서는 설날이 되면 정성껏 제물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낸다.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하지만 많이 간소해진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마마을에서는 차례를 지내는 데도 집안에 따라 순서가 정해져 있다. 가장 먼저 장손 집에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낸 다음, 서열에 따라 순서대로 차례를 지낸다. 그러면 오전 10시경에나 모든 집안의 차례가 끝난다. 차례가 끝나면 집안 어른과과 마을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하러 다닌다. 어른들은 집 안에 찾아온 세배객들에게 직접 빚은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덕담을 베푼다.

옛날에는 정초에 지키는 금기가 많았다. 금기란 어떤 인물, 사물, 언어, 행위 등을 신성시하거나 두렵다고 여기는 것이다. 금기로 정해지면 그 대상을 보지 말거나, 말하지 않거나, 만지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아야 한다. 역으로, 반드시 정해진 대로 해야 하는 것도 금기에 해당한다.

전통 사회에서 정월은 항상 깨끗하고 경건하게 생활하는 달이었다. 그래서 정초에는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금기들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중 진마마을 사람들이 가장 자세하게 기억하는 금기가 ‘뱀맥이’였다. 정초 뱀날이 되면, 그날의 일자 수에 따라 “뱀의 마리 수와 같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뱀이 민가에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巳(사)’, ‘龍(용)’, ‘龜(구)’, ‘백사(白蛇)’ 등의 글씨를 종이에 써서 우물이나 기둥, 장독대 같은 곳에 거꾸로 붙여 놓았다.

[노적쌈과 시루변, 댓불놓기]

진마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는 찹쌀, 차조, 붉은팥, 찰수수, 검은콩 등을 섞어 오곡밥을 짓는다. 그렇게 지은 오곡밥은 먼저 액막이를 위해 집 안팎에 뿌린 다음, 저녁 식탁에 올려서 김과 나물, 두부 등과 함께 먹는다.

진마마을에서는 오곡밥을 김에 싸서 만든 것을 ‘노적쌈’이라고 했다. 두부를 함께 먹는 것은 ‘두부처럼 토실하게 살쪄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지금이야 날씬함이 미의 기준이지만, 예전에야 어디 그랬는가. 살집이 넉넉하게 붙어 있어야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정월 열나흗날에는 부스럼을 막기 위해 호두나 땅콩을 먹기도 하고, 시루를 찔 때 찜기와 시루 사이 틈새에 밀가루 반죽을 붙여 ‘시루변’을 만들어 먹었다. 이와 함께 쇠코뚜레를 대문 위에 걸어 놓기도 했고, 엄나무를 안방 문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들은 모두 잡귀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정월 열나흗날 자정이 되면 댓불을 놓았다. 집 안 마당에 미리 쌓아 놓은 대나무, 고춧대, 가지나무, 메밀대, 볏짚, 피마자대 등에 불을 지피면 ‘후두두둑’, ‘툭툭’, ‘펑펑’ 하면서 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사람들은 소리가 크게 날수록 농사가 잘 되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그리고 집 안의 나쁜 기운들도 다 물러 간다고 믿었다. 갖가지 요란한 소리와 고춧대에서 풍겨 나오는 매운 냄새는 집 안 전체로 퍼질 것이고, 이로 인해 액운이 놀라고 질색하여 멀리 도망간다고 믿은 것이다.

댓불이 잘 타오르면 어머니는 아이들을 마당으로 불러 자기 나이 수만큼 불 위로 뛰어 넘게 했다. 어머니는 먼저 아이들 옷을 댓불에 털고 나서 뛰어넘게 했다. 이렇게 해야 한 해 동안 닥쳐 올 궂을 일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로 대나무를 피웠기 때문에 ‘댓불’을 놓는다고 했는데, 이 댓불을 뛰어 넘으면서 건강과 한 해의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더위팔기와 물떠오기]

정월 보름날 새벽이 되면 진마마을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분주했다. 아이들은 가장 먼저 마주치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상대방이 얼떨결에 대답을 하면 “내 더위 가져가!” 하고 외쳤다. 그러면 그 해의 더위를 상대방이 가져가서 본인은 더위를 타지 않게 된다고 믿었다. 진마마을 사람들은 “보름날에는 더위를 팔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면서 웃음꽃을 피우며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진마마을 아이들이 더위팔기로 분주했다면, 어른들은 ‘물떠오기’로 정월 보름을 분주하게 보냈다. ‘물떠오기’는 마을의 우물이 마르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 뒤편 산등성이 중턱에 갈대밭이 있는데, 그곳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었다. ‘물떠오기’는 옹기병을 들고 그 샘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갈대밭샘에 도착하면 정성스럽게 물을 담은 후 주둥이에 솔잎을 빽빽하게 꽂아 물이 잘 새지 않게 한다.

그리고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는 옹기병을 거꾸로 들고 한 방울씩 떨어뜨리면서 내려온다. 마을에 내려오면 웃돔과 가운뎃돔, 아랫돔에 있는 세 우물로 가져가 “물 떠다 놓는다!”라고 외친 후 샘굿을 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진마마을 ‘물떠오기’는 마을에서 식수로 이용하는 세 곳의 우물이 갈대밭에 있는 샘물처럼 마르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한 해 동안 무탈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떠오기’는 1970년경에 중단되고 말았다.

[정보제공]

  • •  서용석(남, 1939년생,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주민)
  • •  김수성(남, 1947년생,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주민)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