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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다리기를 하고 당산에 줄을 감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C010105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숙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에서는 음력으로 2월 초하룻날 줄다리기를 한다. 정월 그믐 낮부터 당산제를 준비하기 시작해 2월 초하루 새벽에 제를 지내고 나면 금세 동쪽 하늘에서 동이 터온다. 그러면 아침식사를 마친 주민들은 짚 다발을 가지고 하나둘씩 마을회관으로 모인다.

[마을회관 앞에서 줄을 드리고]

오전 10시경, 마을회관 앞 광장에 짚 다발이 쌓이자 마을 사람들이 2개 조로 나뉘어 줄을 드리기 시작한다. 짚 더미를 옆에 두고 앉은 사람은 줄에 짚을 먹이는 사람이다. 한 조에 두 사람이 짚을 먹이는데, 한 사람이 짚 더미에서 한 주먹씩 짚을 떼어 주면 다른 한 사람은 새끼를 꼬듯이 짚을 돌려 가면서 줄에 짚을 먹인다. 그러면 줄을 꼬는 사람은 줄 머리에 끼워 놓은 막대기를 오른쪽 방향으로 돌리며 뒷걸음질을 치면서 줄을 꼬아 나간다. 이때 중간 중간에 사람이 서서 함께 돌려서 감아야 풀어지지 않고 잘 꼬아진다.

어른 팔뚝만한 두께로 50m 남짓한 줄 3개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다시 하나로 꼬는데, 마을사람 모두가 달려들어야 줄 하나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줄 세 개를 만들어 그것을 다시 하나로 꼬면 줄이 완성된다. 모두 아홉 가닥의 줄이 꼬여 하나의 줄을 만드는 셈이다.

줄을 드리는 데 걸린 시간은 2시간 정도로,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중간에 두어 차례 쉬어 가면서 줄을 꼬았다. 쉬는 시간에는 삶은 돼지고기ㆍ김치ㆍ미나리나물ㆍ콩나물이 상에 차려져 나왔고, 마을 사람들은 빙 둘러앉아 소주와 맥주를 나눠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옛 시절로 건너갔다.

“전에는 마래주유소 뒤쪽 산에서 줄을 드렸어. 거기가 젤 넓었거든. 그리고 오늘 하지 않고 전날 다 드렸어. 농악을 치면서 오방돌기를 했는디, 그것이 재밌었거든.”

[풍년을 기원하는 오방돌기와 줄다리기]

이렇게 줄이 완성되면, 전에는 마을 농악패인 ‘기맹기패’를 앞세우고 오방돌기를 했다. 줄을 어깨에 메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한 것이다. 오방돌기를 할 때는 무동을 태우기도 했는데, 많을 때는 서너 명이 한꺼번에 타기도 했단다. 무동을 태우고도 좁다랗고 긴 논두렁길을 잘도 다녔고, 샘 난간에 서서 굿을 치면서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오방돌기가 끝나면 줄당산 앞에 가서 남자 편과 여자 편으로 나눠 줄다리기를 했다. 마을 주민들은 그때를 회상하면서 한 마디씩 보탠다.

“여자들이 이겼어. 여자들이 이겨야 풍년이 든께.”

“남자들 숫자가 절반도 안 되었제. 아그들, 근게 장개[장가] 안 간 놈은 다 여자 편이었응께.”

“할매들이 막가지 들고 다니면서 때리고 다녔어. 대막가지 이런 놈[팔을 벌려 막대기 길이를 가늠하면서]으로 얼매나 두들겨 맞았는지 몰라. 그래도 그때가 좋았는디.”

지금도 줄다리기를 하지만, 예전 같지가 않다. 마을 주민들이 다 나와도 숫자가 30명이 못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부 나이든 분들이라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마을회관 앞에서 줄을 드려 줄을 어깨에 메고 ‘영기’를 앞세우고 200여m쯤 떨어져 있는 말바위를 돈 다음 그 앞에 있는 도로 변에서 간단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줄당산에 줄을 감는 것으로 끝을 낸다.

[농악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지만]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이제는 형식적으로만 한다.”고 하면서 마을 농악패의 맥이 끊기게 된 것을 많이 아쉬워했다. 마래마을에서 농악 소리가 완전히 끊기게 된 것은 5년쯤 전인데, “쇠를 칠 사람이 없어” 농악패를 구성하지 못하게 되면서 오방돌기, 지신밟기, 샘굿 역시 전승이 중단되었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줄당산에 줄을 감고 나서는 기맹기패가 초청한 집을 돌면서 며칠 동안 마당밟기를 했다.”고 한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노란 콩을 볶아 주머니에 넣고 농악패를 따라 다니면서 간식거리로 먹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농악패가 없다 보니 아무래도 신명이 나지 않는단다. 기다랗게 줄을 드려 그것을 옆구리에 끼고 오방돌기를 하지만 도무지 흥이 나지 않는다고. 줄다리기도 마찬가지다. 쇳소리든 북소리든, 흥을 돋아 줄 만한 소리가 있어야 하는데 “영차, 영차” 하면서 서너 차례 힘을 쓰다가 여자 편의 승리로 끝을 맺고 만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의 전승 의지는 강하다. 2월 초하루가 되면 당산제를 지내고, 줄을 드려 줄다리기를 한 후 줄당산에 줄을 감는 것을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기고 있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이 마을에 남아 있을 때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마을회관 문을 밀치고 나오는 조사자에게 누군가 신신 당부를 한다.

“내년에도 꼭 할 거여. 꼭 할 거니까, 잊지 말고 꼭 와야 혀. 알겄제이잉?”

[정보제공]

  • •  최대근(남, 1927년생,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주민)
  • •  최병호(남, 1927년생,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주민)
  • •  최명진(남, 1936년생,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주민)
  • •  최진성(남, 1939년생,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주민)
  • •  최인동(남, 1952년생,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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