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163
한자 院湖里
영어공식명칭 Wonho-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소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 개설
원호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2.237㎢
가구수 167가구
인구[남/여] 320명[남자 161명|여자 159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원님이나 사또들이 유숙하였던 곳으로 원터라 불리어 원호(院湖)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산일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호리, 학동리, 교동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로 개설하였다. 현재 원호마을, 교동마을, 학동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원호마을은 약 400년 전에 해남 6현 중 한 명인 취죽헌 박백응의 장남 박희길이 국사봉 지세에 반해 머물렀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김해김씨도 입주하였다고 전한다. 원호리에는 1914년까지 산일면사무소가 있었다. 교동마을의 입향조는 400년 전의 밀양박씨라고만 전해진다. 200년 전경 나주임씨 임신묵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일제 침략기에는 일본인이 마을 앞에 제방을 쌓고 농토를 개간하여 중부농장이라고도 불렀다. 학동마을은 고려 중엽 전북 남원에서 경주정씨 정덕남이 정착하여 농업과 염업을 함으로써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염업은 원시적인 형태였지만, 해남군 일대에 소금을 공급하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차츰 가구가 늘어나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고천암 간척지가 생기기 전까지는 갯벌에서 게와 꼬막을 잡았고 굴 양식을 하였다. 염전은 간척 이후 모두 농지로 바뀌었다.

[자연환경]

황산의 명산인 국사봉의 정기가 마을을 감싸안고 있다. 교동마을 뒤로는 옥녀봉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호승산이 마을을 싸고 있다. 학동마을의 남쪽으로는 넓은 고천암들이 있다. 고천암 간척 전에 “상만한천(霜滿寒天)에 울던 기러기도 밤이 되면 해월리[구 학동마을]로 찾아가 푸른 파도에 씻긴 모래밭에 몸을 숨긴다”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풍치를 자랑하였다.

[현황]

원호리(院湖里)는 북쪽으로 연호리, 동쪽으로 일신리, 남쪽으로 해남읍 내사리, 서쪽으로 송호리[황산면]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12.237㎢이고, 원호리, 교동리, 학동리의 3개 행정리에 167가구, 320명[남자 161명, 여자15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 생업은 농업이며, 주 소득원은 쌀이다. 특작물은 배추를 재배한다. 국도 제18호선이 원호리 가운데에서 위쪽으로 동서 방향으로 지나가 원호리를 나누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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