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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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春里 |
영어공식명칭 | Yeongchu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영춘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소정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영춘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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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리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영춘리 | |
성격 | 법정리 |
면적 | 4.118㎢ |
가구수 | 357가구 |
인구[남/여] | 718명[남자 354명|여자 364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예전에는 만석동이라 불렀으나, 솔매등 또는 영춘(永春)이라고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호산리, 송운리, 만석리, 학하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영춘리로 개설하였다. 현재 영춘1구마을, 영춘2구마을, 송운마을, 호산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영춘1구마을은 송산리의 한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호산리, 송운리, 만석리, 학하리 일부 지역을 아울러 마을이 형성되었다. 영춘마을은 1979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구와 2구로 분구되었다. 영춘마을 주변에는 고인돌이 모여 있어 마을의 형성 시기가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영춘1구 마을회관 일대에 과거 옥천장이 형성되었다. 옥천장에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각종 농산물과 소와 돼지 등도 매매되었으며, 대장간까지 있었다. 옥천뿐만 아니라, 삼산, 강진 도암 사람들까지 옥천장을 이용하였다. 교통이 발달하고, 해남읍 상권이 확장됨에 따라 1980년대 중반에 장의 기능이 정지되었다.
송은마을의 입향조는 1603년(선조 36)에 들어온 명씨라고 한다. 그 후 경주정씨가 들어왔으며, 1816년경 김해김씨 김승권(金勝權)이 해남 화원에서 이주하였다고 한다. 300여 년 전에 김해김씨 김영옥, 김연곤 형제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는 설도 있다. 호산마을의 입향조는 1597년에 정착한 경주정씨 정산해(鄭山海)로 본다. 마을 뒤편에 경주정씨 16대조 묘가 있어서 경주정씨가 오래전부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연환경]
호산마을은 서쪽으로 만대산이 보이는 옥천평야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송운마을역시 만대산 산자락 아래 들어선 평야촌이다. 마을 주변에는 소나무가 울창하였다고 한다.
[현황]
영춘리(永春里)는 북쪽으로 영신리, 동쪽으로 성산리, 남쪽으로 송산리, 서쪽으로 해남읍 해리, 해남읍 신안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4.118㎢이고, 영춘1구리, 영춘2구리, 송운리, 호산리의 4개 행정리에 357가구, 718명[남자 354명, 여자 36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면소재지이기 때문에 공공기관과 상점이 많다. 옥천초등학교, 옥천면보건지소, 옥천우체국, 옥천농협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강진 방면으로 뻗은 국도를 따라 다방과 식당, 상점들이 있다. 해남의 대표적 브랜드 쌀인 ‘한눈에 반한 쌀’로 옥천농협과 여러 농가가 계약 생산하고 있다.
영춘1구마을의 고인돌은 동서 일렬로 7기, 북동-남서 방향으로 3기가 있다. 옥천주조장은 전통 막걸리를 지켜 나가며, 해남 쌀과 고구마를 원료로 전통 발효 식초를 개발하여 전국에 판매하고 있다. 옥천지서 앞에는 옥봉선생 백광훈 신도비가 있다. 백광훈은 노수신에게도 수학하였으며, 『옥봉집』을 남긴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영춘리에는 조선실업주식회사 옥천지소가 현재의 옥천복지관 자리에 있었다. 조선실업주식회사 옥천지소 앞에는 석비가 여러 개 있었으나, 해방 후에 주민들이 땅에 묻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