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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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玉埋山鑛山勞動者海沒事件 |
영어공식명칭 | Submergence Accident of Ogmaesan Mountain Mine Workers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문종안 |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옥매산의 광산노동자들이 1945년 8월 21일 제주에서 귀환하던 중 바다에 빠져 사망한 사건.
[역사적 배경]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와 문내면 용암리 사이에 있는 옥매산(玉埋山)은 조선시대부터 옥으로 이름난 산이었다. 1910년 니시자키 쓰루타로[西崎鶴太郞]를 시작으로 일본인들이 옥매산 광산을 본격 경영하기 시작했으며, 1937년 7월부터는 아사다화학공업주식회사[淺田化學工業株式會社]가 경영을 이어갔다. 한편 패색이 짙어진 일제는 제주도를 일본 본토 사수의 보루로 삼아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였다. 이를 위해 수많은 조선인들인 투입되어 진지 동굴 등 군사 시설물을 집중적으로 구축하였다.
[경과]
1945년 4월, 두 차례에 거쳐 약 220여 명의 옥매산 광산 노동자들이 제주도로 이송되었다.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경찰과 헌병의 포위 속에 진행된 강제징용이었다.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합명령이 떨어져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선창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일제는 제주도에 진지 동굴, 해안 동굴을 구축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숙련된 옥매산 광산 노동자들의 발파 기술과 굴착 경험이 필요하였다. 옥매산 광산 노동자들이 파견된 곳은 제주도 모슬포 인근 지역과 구좌읍 해안 동굴, 산방산 등이었으며, 12시간의 고된 노동에 돌아온 것은 주먹밥 하나에 소금뿐이었다. 숙소 또한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고 옥매산 노동자들은 고향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해방의 혼란 속에서 어렵사리 배를 구하였고, 8월 20일 새벽 1시경 조선인 222명과 일본인 관리자 3명을 태운 35톤급 목선은 해남으로 출발하였다. 추자도와 보길도의 중간 지점에 이르던 아침 8시경 기관실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였다. 불은 진화되지 못하였고 그렇게 4시간 동안 표류하였다. 노동자들은 침몰하는 배를 피해 바다로 뛰어들어야만 하였다. 화재 8시간 정도가 지날 무렵 목포에서 진해로 가던 군함이 이들을 발견하고 구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구조된 일본인 한 명이 대부분이 조선인이라 하자 지금껏 구조한 사람들만을 태운 채 떠나 버렸다. 전원 구조가 아니었으며, 구조된 사람들도 청산도에 내려 주고 가 버렸다. 그렇게 구조되지 못한 118명은 고향을 밟지 못한 채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결과]
118명이 한꺼번에 사망하였기에 인근 마을들은 모두 비통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서는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한두 달 동안 굿을 하였다. 자손들은 음력 7월 16일을 제삿날로 정하고 매년 한날한시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산 사람 또한 화재로 인한 화상이나 정신적 충격 등 병으로 숨진 사람이 많았다.
옥매산 광산노동자 해몰 사건의 유가족들은 공론화를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역부족이었고, 2005년 한 일간지에 2면에 걸쳐 기사가 실린 이후 공론화되기 시작하였다. 해남에서는 지역신문인 『해남신문』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정부 차원에서는 2005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피해 조사가 이루어졌다.
2012년 8월 15일 옥매산에 박힌 쇠말뚝을 제거하는 행사가 치러졌으며, 쇠말뚝 제거 행사를 계기로 옥매광산유족회가 결성되었다. 옥매광산유족회 회장은 2012년부터 박철희가 맡고 있으며, 2018년 현재 회원은 60명이다. 1945년 사고 이후 해남을 떠나 연로하거나 수소문이 안 되는 유가족이 많았다.
2015년에는 지역극단 미암이 옥매산 광산노동자 해몰 사건을 모티브로 「그들의 귀향」이라는 연극을 제작하여 공연하였다. 2017년에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갖춘 자연·문화유산 보전단체 내셔널트러스트가 옥매광산 건축물을 ‘올해의 꼭 지켜야 할 자연 문화유산’으로 선정했으며, 옥매광산유족회는 옥매광산 건축물을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 이 또한 옥매산 광산노동자 해몰 사건을 잊지 않고 추모하기 위한 하나의 일환이다. 2017년 『해남우리신문』을 비롯하여 해남 군민 100인의 제안으로 해남옥매광산 희생광부 추모조형물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추모비 조성을 위해 해남 군민 1인이 1만 원씩 내는 성금모금행사가 진행되었다. 총 1,200여 명의 군민과 각 기관단체에서 1400여만 원의 건립 기금을 모금, 조형물 조성 비용을 충당하였다. 2018년 8월 26일에 추모제가 열리는 황산면 선착장 앞에 만들어진 추모 조형물은 배 모양 조각물 위에 희생된 118명의 광부를 상징하는 118개의 원 모양으로 되어 있다. 이외에도 해남에서는 옥매산 광산노동자 해몰 사건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제에 의해 전쟁터로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거나 전쟁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옥매광산유족회 또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현재 다들 고령의 나이이다. 해남 지역은 물론 광주 전남 지역의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공론화와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