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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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益山忠烈詞 |
영어공식명칭 | IksanChungryeolsa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 산76-5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봉곤 |
건립 시기/일시 | 1945년 8월 15일 이후 - 익산 충렬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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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익산 충렬사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 산76-53 |
성격 | 사당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 사곡마을에 있는 사당.
[개설]
충렬사(忠烈詞)는 충무공 이순신을 중심으로 구한말 5열사인 이준·안중근·백정기·이봉창·윤봉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제사는 매년 2월 25일 지방 유림들이 모여 지내고 있다.
이순신 장군[1545~1598]은 본관은 덕수, 시호는 충무공이다. 1591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여 1592년 임진왜란 때 옥포, 사천, 당포, 당항포, 한산도에서 왜선을 격파하였으며,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로서 남해안 일대의 적의 수군을 몰아내었다. 1597년 백의종군하였으나 원균의 수군이 패배하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명량에서 12척의 배로 133척의 적군을 물리치기도 하였으나 1598년 퇴각하는 왜군과 맞서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준 열사[1859~1907]는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리자 고종의 밀사로 참여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자 울분한 나머지 분사(憤死)하였다. 안중근 의사[1879~1910]는 만주와 연해주에서 의병 운동을 전개하다가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피탈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사형을 당하였다. 백정기 열사[1896~1934]는 1910년 3.1운동 이후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33년 상하이의 육삼정에서 일본 요인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하고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이봉창 열사[1901~1932]는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하고 사형을 당하였다. 윤봉길 열사[1908~1932]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일본군 전승축하 기념식이 열리자 식장에 참여하여 수류탄을 던져 일본군 대장 등 요인을 암살하고 사형을 당하였다.
[위치]
익산 충렬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 산76-53번지에 있다.
[변천]
익산 충렬사는 1958년 3월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 주민 박필래가 윤리 정신 함양을 위해 유림 양용섭 등의 협력을 얻어 건립하였다. 매년 9월 초정일에 지역 내 유림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사당과 강당, 담장이 있었으나 2019년 현재는 사당과 담장만 남아 있다.
[형태]
익산 충렬사는 맞배지붕 형태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현황]
익산 충렬사는 2019년 현재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잡초가 무성하고, 건물은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의의와 평가]
익산 충렬사는 이순신 장군과 5열사의 위패를 모셔 우국 충절의 정신을 기리고자 한 본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보수 복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