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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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圭弘 |
영어공식명칭 | Lee Kyuhong |
이칭/별칭 | 원오(元伍),오하(梧下)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혜영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 이규홍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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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이규홍 의병 봉기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11월 15일 - 이규홍 의진을 이끌고 완주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일본군 29명 사살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4월 - 이규홍 부대 해산 |
활동 시기/일시 | 1914년 3월 - 이규홍 대한독립의군부 창립 때 익산 대표로 참가 |
활동 시기/일시 | 1918년 - 이규홍 중국으로 망명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6월 - 이규홍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려고 국내로 잠입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2월 8일 - 이규홍 일본 경찰에 검거 |
몰년 시기/일시 | 1928년 6월 6일 - 이규홍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8년 - 이규홍 대통령표창 수훈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이규홍 건국포장 수훈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이규홍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
출생지 | 팔봉동 - 전라북도 익산시 팔봉동 |
묘소 | 팔봉동 - 전라북도 익산시 팔봉동 |
성격 | 의병|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규홍(李圭弘)[1881~1928]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원오(元五), 호는 오하(梧下)이다. 아버지는 중추원의관을 지낸 이기영(李棋榮)이고, 어머니는 장상문(張相文)의 딸 인동장씨(仁同張氏)이다.
[활동 사항]
이규홍은 1881년 지금의 익산시 팔봉동에서 태어났다. 1906년 4월 박이환(朴駬桓)·문형모(文亨謨)와 함께 태인에서 최익현(崔益鉉)·임병찬(林炳瓚)과 만나 의병 활동에 동참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 이규홍은 집에 비축하였던 곡식과 약 500마지기가 넘는 전답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였다. 박이환의 형 박영식에게 총포와 화약을 구입하게 하고 박이환·문형모의 주선으로 전주감영의 해산 병정 100여 명과 각처에서 자원한 산포수와 의병 등을 규합하였다.
이규홍 부대는 1907년 10월까지 의병 200여 명과 총기 300여 자루, 탄환 등을 준비하였고, 11월 15일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가경재에서 일본군과 처음으로 교전하였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 29명이 사살되었고 의병 21명이 전사하였다. 이후에도 고산·진안·장수·용담·진산·금산 등지에서 전투를 벌여 일본군 56명을 사살하였다. 일본군의 토벌 작전이 거세져 부대를 유지하기 힘들어지자 이규홍은 1908년 4월 의병을 자진 해산하고 산촌에 은거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엿보았다. 1914년 3월 임병찬이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部)를 창립할 때에는 익산 대표로 참여하였다.
이규홍은 1917년 10월 거처를 탐지한 일본 경찰의 급습을 받아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오도산성(五道山城)에서 일본 경찰과 교전 끝에 탈출하였고, 1918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접촉하여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파리로 향하는 김규식(金奎植)의 여비로 1,300원을 제공하는 등 독립운동에 협력하였다. 1920년 3월에는 항일투쟁의 무대를 만주로 옮겨 김좌진(金佐鎭)에게 군관학교 운영 자금으로 3,000원을 헌납하였다.
1920년 6월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한 이규홍은 보부상으로 가장하여 활동하다가 1924년 2월 8일 서울에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경무청에 4개월간 수감되었다. 수감 중에 당한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5월 28일 보석으로 출감하였지만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29년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이규홍의 저술로는 1907년 초부터 1908년 4월까지 1년 4개월간의 의병 활동을 기록한 『오하일기(梧下日記)』가 있다.
[묘소]
이규홍의 묘소는 전라북도 익산시 팔봉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규홍의 공적을 기려 1968년 대통령표창을, 1977년 건국포장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