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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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秉釋 |
영어공식명칭 | Lee Byeongseo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정민 |
출생 시기/일시 | 1894년 1월 19일 - 이병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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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8일 - 이병석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19일 - 이병석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형 확정 |
몰년 시기/일시 | 1930년 5월 28일 - 이병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2년 - 이병석 대통령표창 수훈 |
출생지 | 원수리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
활동지 | 여산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병석(李秉釋)[1894~1930]은 1894년 1월 19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9일 원수리 정영모(鄭永模)의 집에서 이정(李侹)·박사국(朴士國)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논의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 천도교인이 많았던 익산 지역에서는 대개 천도교 창시자 최제우(崔濟愚)[1824~1864]의 추도일인 3월 10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최제우 추도식이 끝난 3월 10일 밤 9시가 되자 익산 곳곳의 산꼭대기에서 일제히 봉화가 오르고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산면에서도 이병석·이정·박사국 등이 주도하여 횃불 시위를 일으켰는데, 익산 지역에서 가장 격렬한 시위 중 하나였다. 약 200여 명의 면민들은 두루마기를 잘라 ‘조선자주독립(朝鮮自主獨立)’이라고 쓴 기를 앞세우고 여산면 헌병분견소 가까이까지 다가가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병석은 시위 대열을 이끌다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4월 18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개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병석은 1930년 5월 2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한민국 정부는 이병석의 공적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현재 여산면 여산초등학교 앞에 세워진 ‘여산 독립만세운동 기념비’에 이병석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