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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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元集 |
영어공식명칭 | Oh Wonjib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상범 |
출생 시기/일시 | 1885년 - 오원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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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6월 1일 - 오원집 고현리교회 설립 |
활동 시기/일시 | 1917년 - 오원집 후리교회 설립 |
활동 시기/일시 | 1925년 - 오원집 후리교회 장로 취임 |
몰년 시기/일시 | 1953년 - 오원집 사망 |
출생지 | 임피 -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
활동지 | 지경교회 -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만자로 21[지경리 791] |
활동지 | 고현교회 - 전라북도 익산시 선화로 125[모현동1가 470-1] |
성격 | 종교인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에서 활동한 종교인.
[활동 사항]
오원집(吳元集)[1885~1953]은 1885년 지금의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에서 태어났다. 할머니 집을 방문하였다가 만지산교회[현 지경교회] 교인들의 전도를 받았다. 만지산교회는 최관보, 정치선, 강채오, 정백현, 이양화와 부인인 최매리, 최흥서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오원집은 만지산교회에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결혼한 뒤 처가가 있는 익산으로 이주해 모현동에 거주하면서도 수십 리 길을 걸어 만지산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였다.
당시 군산에서 활동한 전킨(W. M. Junkin) 선교사를 대신하여 군산뿐 아니라 익산까지 선교 활동을 하던 해리슨(W. B. Harrison) 선교사는 오원집의 열성에 감탄하여 세례를 주고 성경을 가르쳤다. 오원집은 이때부터 해리슨 선교사를 따라 노방전도를 함께하며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이후 오원집은 오덕근·김자윤·고선경·김경장·오덕순 등과 함께 익산 고현리에 교회를 설립하자고 결의하였고, 1906년 6월 1일 해리슨 선교사와 양응칠 조사의 도움을 받아 고현리교회(古縣里敎會)[현 고현교회의 전신]를 세웠다.
고현리교회는 전주, 군산에 이어 익산에 세워진 최초의 개신교회였다. 설립된 지 4년 후에 경술국치라는 민족적 비극을 겪었지만 고현리교회는 가난한 이웃을 돕고 믿음을 전하는 등 신앙을 통하여 민족정신을 불어넣으며 교회의 역할을 다하였다. 또한 3.1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오원집은 익산에 삼산의원을 개설한 김병수와 함께 1917년 후리[현 전라북도 익산시 주현동]에 후리교회[현 이리제일교회]를 설립하고 1925년에 장로에 취임하였다. 1953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익산시 황등묘지에는 1935년에 세운 오원집 송신비(頌信碑)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