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658
한자 密陽郡廳移轉反對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7년 5월 1일연표보기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시작
종결 시기/일시 1929년 9월 2일연표보기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종결
발단 시기/일시 1927년 4월 10일경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군청 이전 소식 밀양 군내에 확산
전개 시기/일시 1927년 5월 2일 오전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군청 이전 반대 삐라 1만여 매 살포
전개 시기/일시 1927년 5월 2일 오후 3시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수천 명의 군민이 모여, 군청 이전 반대를 결의
전개 시기/일시 1927년 5월 3일 오후 3시 30분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군민 대표 경남도청을 방문, 이전 반대 진정
전개 시기/일시 1927년 5월 3일 오후 6시~오후 10시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군민 2,000여 명이 군수와 서무주임의 사택 쇄도, 시내에서 군청 이전 반대 시위
전개 시기/일시 1927년 5월 3일 오후 8시 30분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밀양청년회 긴급임시총회 개최, 이전 반대 결의
전개 시기/일시 1927년 5월 7일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군민 대표 총독부 내무국장을 방문하고 군청이전 반대 진정
전개 시기/일시 1927년 5월 8일 오전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수백 명이 참여하여, 총독부 방문 결과 보고회 개최
전개 시기/일시 1927년 5월 10일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면협의원 대표 30명과 응원 50여 명이 도당국에 이전 반대 진정
전개 시기/일시 1927년 5월 11일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13면 대표자가 모여 경남도청에 이전 반대 진정
전개 시기/일시 1927년 5월 11일 오후 8시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일본인과 조선인 대표들이 총독부 방문 결과를 보고하고, 장래 진행 방침 논의
전개 시기/일시 1927년 5월 14일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13면 유림 대표 경남도청 방문, 이전 반대를 진정
전개 시기/일시 1927년 5월 15일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군민 대표 총독부 2차 방문, 이전 반대 진정
전개 시기/일시 1927년 5월 24일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경남도지사, 군민대표에게 이전 공사의 중지와 총독부 직접 처리 방침을 언명
전개 시기/일시 1927년 6월 13일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역전 주민, 총독부를 방문하고 이전 운동 재개
전개 시기/일시 1927년 6월 24일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정무총감, 군민 대표에게 군청 이전 중지 언명
전개 시기/일시 1929년 8월 22일 -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 밀양군청 삼문리 이전을 경상남도지사가 밀양군수에게 통지
발생|시작 장소 밀양군청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지도보기
종결 장소 밀양군청 - 경상남도 밀양시 삼문동 지도보기
성격 주민운동
관련 인물/단체 쇼카 사다타로[松花定太郞]|한춘서|한춘옥|이원구|밀양군청|경남도청|조선총독부|정무총감

[정의]

1927~1929년 경상남도 밀양군청을 이전하는 데 반대하여 밀양 군민들이 전개한 주민운동.

[개설]

1927년 밀양역전에 이권을 가지고 있던 일본인과 조선인 지주들은 경상남도 도지사의 동조 아래, 내일동에 있던 밀양군청가곡동밀양역 앞으로 이전하려 하였다. 이에 격분한 군민들은 선전 삐라를 살포하고 집회와 시위를 벌이는 한편, 경남도청과 조선총독부에 수 차례 대표를 보내 면담과 진정을 전개하는 등 격렬한 반대 운동을 추진하였다. 밀양청년회와 밀양의 유림 및 면협의회 등 밀양 지역 단체들도 속속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에 합류하였다.

그 결과 총독부가 군청 이전을 재고하기로 입장을 세웠지만, 이번에는 군청 이전을 주도한 측이 반발하였다. 이후 양측의 대립이 2년여 계속되다가, 1929년 양측의 중간 지점인 삼문리[현 삼문동]로 군청을 이전하였다.

[역사적 배경]

1927년 당시 밀양군청내일동[현 밀양관아지]에 있었는데, 밀양역전에 이권을 가지고 있던 부호들이 군청을 가곡동 밀양역 앞으로 옮기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군청 이전 계획을 주도한 것은 일본인 대지주 쇼카[松花定太郞]와 가네모리[金森某]였고, 한춘서와 한춘옥 등 조선인 지주들도 동참하였다. 군청의 이전은 많은 주민들의 이해와 관련된 일이었지만, 경상남도지사의 동조 아래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다.

1927년 4월 10일경 군청 이전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밀양 군민들의 반대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군민들은 밀양군 13면에 사실관계를 알리는 한편으로, 군민들을 규합하여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에 나서게 되었다.

[경과]

1927년 5월 1일 밀양 읍내의 유지 100여 명은 교섭위원 2인을 군청으로 보내 이원구 군수를 만나 사실관계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밀양군청의 이전은 와다[和田] 경상남도 도지사의 결정 사항임을 확인하였다. 이에 분개한 군민들은 밀양군청이전반대운동을 시작하였다.

5월 2일 오전 군청 이전을 반대하는 삐라 1만여 매를 밀양 시내에 살포한 뒤, 오후 3시 수천 명의 군민들이 고야산에 모여 집회를 개최하였다. 집회에 모인 군민들은 군민 대다수의 의사를 무시한 일방적인 관치 행정을 비난하고, 향후 계획으로 자녀들의 심상학교 등교 및 납세 거부와 소방대협의원 등 군내 공직자의 총사직 등을 논의하는 한편, 50여 명의 위원을 교섭위원 등으로 선정하였다.

이후 교섭위원들은 경남도청은 물론 조선총독부를 찾아, 면담을 진행하고 진정서를 전달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집회와 시위도 이어졌는데, 계속되는 집회에는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군민이 모여, 도청과 총독부를 상대로 한 교섭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였다. 군민들은 시내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군청을 포위하고 질문 공세를 펴기도 하였다.

1927년 5월 3일 오후 3시 30분 군민 대표가 경남도청을 방문, 이전 반대를 진정하였다. 1927년 5월 3일 오후 6시~10시 군민 2,000여 명이 군수와 서무주임의 사택에 쇄도하였고, 시내에서는 군청 이전 반대 시위를 하였다. 1927년 5월 3일 오후 8시 30분 밀양청년회 긴급임시총회를 개최하여, 이전 반대 결의를 하였다. 1927년 5월 7일 군민 대표가 총독부 내무국장을 방문하고 군청 이전 반대 진정을 하였다. 1927년 5월 8일 오전 수백 명이 참여하여 총독부 방문 결과 보고회를 개최하였다.

밀양 지역의 각급 단체들도 속속 대열에 합류하였다. 1927년 5월 3일 밀양청년회는 긴급임시총회를 열어, 군청 이전 반대를 결의하고 위원을 선정했다. 1927년 5월 10일에는 면협의원 대표 30명과 응원하는 사람들 50여 명이 도 당국에 진정하였다.

1927년 5월 11일 13면 대표자가 모여 경남도청에 이전 반대 진정을 하였다. 1927년 5월 11일 오후 8시 일본인과 조선인 대표들은 별도 장소에 모여 총독부 방문 결과를 보고하고, 장래 진행 방침을 논의하였다. 1927년 5월 14일 밀양군 13면 유림 대표가 경남도청을 방문하여 유림 700여 명의 이전 반대 진정서를 전달하였다. 1927년 5월 15일 군민 대표가 총독부 2차 방문하여 이전 반대 진정을 하였다.

이런 활동의 결과 1927년 5월 24일 총독부에서는 군청 신축 관련 일정을 연기하고, 구 청사를 그대로 사용하는 방침을 정하였다. 1927년 5월 24일 경남도지사, 군민 대표에게 이전 공사의 중지와 총독부 직접 처리 방침을 언명하였다. 이로써 군청 이전 문제는 무위로 돌아가는 듯 했지만, 이번에는 군청 이전을 주도한 측에서 들고 일어섰다. 이들 역시 지방 유력자를 통하여 총독부에 진정을 넣고 주민들을 모아 시위를 벌이는 동시에, 면과 촌에 사람을 보내 군청 이전 진정서에 도장을 받는 등 군청 이전을 관철하기 위하여 기를 쓰고 나섰다. 1927년 6월 13일 역전 주민이 총독부를 방문하고 이전 운동을 재개하였다. 이에 이전 반대측에서도 다시 총독부를 찾아 정무총감을 면담하면서, 1927년 6월 24일 정무총감, 군민 대표에게 군청 이전 중지 언명을 하였다. 1927년 11월 역전 주민이 군청 이전을 획책하며 이전 진정서에 도장 날인 작업을 하였다.

양측 모두 빈번하게 총독부에 진정하고, 총독부는 이전 불가 방침을 재확인하는 일이 2년여 반복되었다. 1928년 3월에는 경상남도지사가 사직하기도 하였다.

[결과]

1929년 8월 22일 경남도지사는 밀양군수에게 군청의 이전 결정을 통지하였다. 밀양군청 이전 장소는 가곡동의 삼문리재판소[현 밀양시립도서관 자리] 앞이었다. 1929년 9월 2일 밀양군청의 신축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의의와 평가]

일본인 및 조선인 지주의 이권 추구와 이권을 비호하는 관치 행정에 맞서, 밀양의 군민과 사회단체가 연대하여 일방적인 관치 행정에 제동을 걸고 밀양의 전통적 중심지가 소외되는 것을 저지한 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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