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5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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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芳梨里白磁- |
영어공식명칭 | White Porcelain Kiln Site in Bangi-ri |
이칭/별칭 | 방이리 백자 요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 1217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곽장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7년 - 방이리 백자 가마터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문화 연구소에서 지표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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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방이리 백자 가마터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 1217 |
성격 | 가마터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가마터.
[위치]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에서 지방도 제3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600m 정도 가면 방이리 고방 마을이 나오는데, 고방 마을 서쪽에 방이리 백자 가마터가 자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7년에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문화 연구소가 실시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무주군』 제작을 위한 지표 조사에서 가마터의 존재가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되었다. 15세기~16세기에 분청사기를 생산하던 가마터로 추정되며, 당시 지표 조사에서 다양한 종류의 분청사기편과 도지미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현황]
방이리 백자 가마터는 무주군 적상면과 부남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비교적 험준한 산줄기 동쪽 기슭 말단부에 해당되는데, 지형이 완만해 현재 대부분 계단식 농경지로 개간되어 있다. 오래전 계단식 농경지로 개간된 이후 대규모 비닐하우스 단지가 조성되는 과정에서 유적이 유실 내지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가마터가 자리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역에 불 먹은 흙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어 가마터가 이미 심하게 파괴된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방이리 백자 가마터는 조선 전기에 분청사기를 생산하던 가마터로 추정된다. 고려 말기 대몽 항쟁과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전라북도 부안 지역과 전라남도 강진 지역의 청자 문화가 쇠퇴하였다. 이 무렵 무주 지역을 중심으로 진안 지역과 임실 지역, 순창 지역, 남원 지역에서 후기 청자와 분청사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왜구의 잦은 침입과 극심한 피해로 해안과 가까운 곳에서 가마의 운영이 어려워지자 당시에 최고의 도공들이 안전한 내륙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방이리 백자 가마터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 분청사기가 당시에 장인 집단의 이주를 고고학적으로 방증해 준다. 방이리 백자 가마터는 우리나라에서 도자 문화가 융성하였던 진안고원(鎭安高原) 속 무주 지역에서의 조선 전기 분청사기의 등장과 그 성격을 밝히는 데 값진 가마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