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974
한자 社會
영어공식명칭 Society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지원구

[정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지역민들과 관련된 모든 현상.

[개설]

사회란 일정한 경계가 설정된 영토에서 종교·가치관·규범·언어·문화 등을 상호 공유하면서 특정한 제도와 조직을 형성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성적 관계를 통하여 성원을 재생산하면서 존속하는 인간 집단을 말한다.

예산 지역의 전통사회는 자연과 환경에 따라 형성·발전·변화되어 왔는데, 최근에는 지역사회가 산업화, 도시화되면서 고유한 특징은 사라지고 다른 지역과 일률적으로 통일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다른 지역과 소통하고 협업하면서 지역사회가 발전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나 고유한 지역의 색채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부정적 요소로 지적될 수 있다.

[인구의 변화]

조선시대 예산 지역의 인구는 조선 전기의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1,385호에 6,209명이 거주한 것으로 파악된다. 조선 후기에는 인구가 증가하여 『호구총수』를 기준으로 하면 1만 1583호에 4만 1834명으로 집계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인구는 다시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1925년 9만 3029명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인구 증가 현상은 연평균 1.5% 내외의 증가율을 보이다가 1970년대 후반에 15만 7026명으로 최정점을 이룬 후 1970년대부터 이루어진 급격한 공업화로 인하여 농어촌 인구가 도시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감소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70년 후반부터 1980년 초반까지의 인구 감소율이 매년 1%대였던 반면, 1980년 중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는 매년 2%대로 더욱 더 가속화되었다. 이후에도 인구 감소 현상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지역사회의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2018년 1월 말 현재 예산군의 인구는 8만 2512명이다.

[사회생활]

예산군의 사회생활은 의식주 생활과 생활 용구, 일생 의례, 세시풍속, 민속놀이 등으로 구분된다. 의식주 생활에서 의식주는 인간 생활의 기본적 요소인 입는 것, 먹는 것, 사는 곳을 일컫는다. 옷은 우리나라의 경우 사계절이 뚜렷하여 자연스럽게 철에 따라 입는 옷이 달라져 다양하게 발달되었다. 자급자족하던 전통 시대의 경우에는 각 지역의 특색과 환경에 맞게 옷을 만들고 입고 살아왔으나, 교통이 발달하고 기술이 진보하면서 각 지역에 전승되던 옷의 특징은 사라지고 일률적으로 통일되어 왔다. 예산군 지역의 의생활 또한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유사하다. 다만, 1980년대부터 1926년 충청 제사공장이 설립되면서 단절되었던 직물과 관련된 삼베 길쌈이 다시 행해지고 있는 특징이 있다.

식생활은 곡물, 어류, 육류 등으로 크게 나뉘는데, 지리와 환경 등에 따라 결정된다. 예산군은 예당평야를 중심으로 일찍부터 벼농사가 발달되었다. 주식은 쌀밥을 비롯하여 반찬은 간장, 된장, 고추장을 기본으로 각종 국, 김치, 찌개, 나물류, 젓갈류, 생선류, 장아찌 등을 반찬으로 한다. 특히 예산 지역에서는 나물과 젓갈, 장아찌가 다양하게 발달되었다. 특별 음식으로는 백설기, 수수팥떡, 시루떡, 인절미, 송편 등의 떡과 곡류를 쪄서 누룩을 넣어 만든 맑고 황색을 띤 약주 등이 있다. 또한 예산 지역은 일부 특수 농작물을 재배하여 식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가공 농산물이 유통되면서 식생활에 변화를 주고 있다. 예산 지역의 음식은 호남 지방의 음식과 달리 경기 지방의 음식 솜씨와 맛을 지니고 있으며, 깔끔하고 무덤덤하며 요란스럽지 않는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충청남도의 가옥은 일반적으로 자연적·인문적 측면에서 차령산맥에 의해 중부형과 남부형으로 구분된다. 예산 지역은 중부형에 속해 가야산과 차령산맥 이북의 민가 구조로서 한랭한 북서 계절풍에 잘 적응하고 있는 양식이다. 기본형은 ‘一’자 3칸형을 기본형으로 하며, 확장에 따라 ‘ㄷ’, ‘ㅁ’자형이 되기도 한다. 대청마루가 존재하고, 분동하지 않고 곡부를 활용하는 형태가 많은 것이 큰 특징이다. 그러나 1977년 취락구조개선사업 이후 가옥의 지역적 특징은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는 가옥 내에 방, 거실, 화장실 등까지 포함되고, 건축재료도 흙과 나무의 전통 재료는 사라지고 시멘트, 철근, 벽돌 등이 사용되어 다른 지역과의 주거 건축의 차이가 없어졌다. 더구나 예산 지역에도 아파트의 건설이 급증하게 되어 점차 아파트 중심의 문화로 변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생활 용구는 생활의 편리를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의 총칭이다. 그래서 다양한 도구가 만들어져 사용되었는데, 전통시대의 경우에는 지역적 차이가 상존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다른 지역과의 교류로 인하여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예산 지역은 이른 시기부터 농업이 발달되어온 지역으로 농기구가 다양하게 발달되어 왔다.

일생 의례는 평생 의례라고도 하는데,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치는 수많은 각종 의례를 의미한다. 출생 의례, 성년 의례, 혼인례, 회갑, 회혼례, 상장례, 제례 등이 포함된다. 일생 의례는 지역적 특성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문화적 요소이다. 조선시대부터 유교식 의례 문화가 뿌리 깊게 작용한 결과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지역사회가 산업화, 도시화되면서 전통의 일생 의례들도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주술적인 사고와 행위와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번거로운 것 등은 생략하거나 간소하게 하고 있다.

세시풍속은 1년을 주기로 계절에 따라서 관습적으로 되풀이 되는 행위를 의미한다. 지금은 연중행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세시, 월령, 시령 등 계절성을 강조하여 사용하였다. 특히 세시풍속은 개인성보다는 집단성을 대표한다. 따라서 공동체의 규제성이 강하게 작용하며, 어기면 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세시풍속 또한 일생 의례와 마찬가지로 예산 지역의 특징적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 행해지는 , 정월대보름, 입춘, 초파일, 단오, 칠석, 추석, 동지, 섣달그믐 등으로 역시 지역적 특징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9월에 행해지는 국화놀이가 있어 9월 9일 국화주를 담는 풍습이 지금까지도 전한다.

민속놀이는 전통 놀이라고도 하며, 놀이의 주체자, 놀이의 목적, 놀이의 시기, 놀이의 성격 등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예산군 지역도 다양한 전통 놀이 문화가 전래되고 있으나 역시 다른 지역과 특별히 구별되는 양상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다른 지역에서 흔히 행해지는 여자 성인 놀이인 ‘그네뛰기’가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다. 한편 전통 놀이가 전승되지 않으면서, 놀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게 되고 다른 놀이와 혼동되게 되면서 앞으로는 전통 놀이가 단절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민속놀이는 고누, 돌치기, 땅따먹기, 자치기, 널뛰기, 오징어놀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말뚝박기, 연날리기,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비석치기 등이 있다.

[사회경제]

예산 지역은 지형적 특성상 삽교천무한천변을 중심으로 삽교평야가 넓게 형성되어 있어 일찍부터 벼농사를 비롯한 농업이 발달되었다. 이러한 농업 중심의 경제구조는 현재까지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1910년대에 설립된 예산농업고등학교는 수많은 농업인을 양성하여 지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1929년 조선농지개발사업의 하나로 착공되었다가 중단된 이후 1964년 12월 준공된 예당저수지는 예산 지역을 농업의 중심 지역으로 발달시켰다. 이 외에 1923년 일본인에 의하여 도입된 사과 재배가 급속도로 전파되면서 현재는 과수 재배 농가가 매우 높은 추세로 늘어난 상태이며, 예산의 지역 특산품인 황토사과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하였다.

이러한 농업의 발달과 더불어 조선 후기에는 사회경제의 발전과 함께 상공업이 특히 발달하였다. 그것은 내포라는 자연지리의 특성과 연동되는데, 특히 예덕상무사가 결성되어 당시 유통경제 발달을 촉진하였다. 이들은 장시를 중심으로 순회하면서 물품을 유통시켰고, 규모가 큰 보부상의 경우에는 수운과 우마차 등을 이용하여 다량의 상품을 원거리까지 운반·판매하기도 하였다. 당초 보상과 부상의 행상조합이 별개로 존재하였는데, 1883년 두 조직을 통합하여 운영하였다가 1899년 상무사로 개칭하였다. 이처럼 문물과 유통의 중심지로서의 기능은 일제강점기에도 그대로 이어져 내포 지역 중소 지주들의 자본으로 1913년 최초의 지방은행인 호서은행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1970년 후반부터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예산 지역의 기반인 농업과 상업 등의 사회경제 구조는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 등으로 인하여 또 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다. 농업 인력의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농업 기계화 및 시설 자동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기존 논농사 위주의 경영방식을 탈피하여 특수작물, 채소 재배 등으로 다양하게 재배 방식이 확장되고 있다. 최근에는 귀농 인구의 유치와 지원을 통하여 새로운 농업 인력을 육성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농공단지와 산업단지를 조성하여 1차산업 이외에도 2·3차산업인 공업·제조업 등으로의 영역 확장을 통하여 1차 생산물의 소비와 일자리 창출 등을 모색하고 있다.

[사회운동]

예산 지역에서의 사회운동의 시작은 일제강점기부터이다. 당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과 조선물산장려운동이 예산 지역까지 파급되었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 국채를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으로 대구에서 시작되었다. 국채보상운동이 『대한매일신보』, 『제국신문』, 『만세보』, 『황성신문』 등지에 보도되자 전국적으로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호응이 일어났다. 특히 국채보상운동은 계몽적 활동과 모금 활동의 두 가지 형태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국채보상운동은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되어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1일 일어난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은 예산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울 에서 일어난 3.1운동이 예산 지역까지 전파되어 3월 3일 시위가 시작되어 4월 12일까지 지속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물산장려운동은 1920년대 초부터 1930년대 말까지 한민족이 거족적으로 전개한 경제 자립 운동이었다. 경제 자립 운동의 시작은 3.1운동 직후 부터이며, 이러한 현상이 결국 물산장려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물산장려운동은 처음 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는데, 강연회 등의 계몽 활동을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사회운동은 광복 이후에도 전국적인 사회운동과 연관되어 지역에서 전개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재건국민운동, 새마을운동, 바르게살기운동, 제2의 건국운동 등이다. 재건국민운동은 5.16군사정변 직후부터 벌인 범국민운동으로 1961년 6월부터 1964년 8월까지 전개된 관 주도의 국민운동이다. 1975년 재건국민운동중앙회가 해체되면서 소멸되었다. 재건국민운동은 시군구 및 읍면동에 회칙이 전달되어 지역적으로 전개되었다. 추진한 사업은 조직 구성[전국재건청년회, 부녀회, 집단촉진회 등], 교육 사업, 동포애 발양 사업, 선전·계몽 사업, 생활개선 사업 등이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부터 시작된 범국민적 지역사회개발운동으로 근면·자조·협동의 기본 정신과 실천을 범국민적·범국가적으로 추진하여 국가발전을 가속적으로 촉진시키려는 목적으로 진행된 운동이다. 예산 지역에서는 처음 관주도 방식으로 절대 빈곤 극복, 환경 개선, 정신 개발, 물질적 풍요 및 성장 추구 등을 목표로 진행되다가 1984년부터 지회가 설립되어 민주도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더불어 살아가는 국민운동이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제2의 새마을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바르게살기운동은 인간의 진정한 인간됨을 회복시키기 위한 범국민적 의식 개혁 운동이다. 진실·질서·화합을 3대 이념으로 정직한 개인, 더불어 사는 사회, 건강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민주적, 문화적 국민의식의 함양과 선진국형 사회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의식 개혁 운동, 도덕성 회복 운동, 선진시민의식 함양 운동, 청탁 배격 운동, 허례허식 추방 운동, 부정심리 추방 운동, 건전한 소비생활 실천 운동, 범국민 친절 운동, 학교 폭력 근절 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제2의 건국운동은 21세기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한국과 한국인상을 정립하여 재도약을 이룩하기 위한 것으로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에서 파생된 많은 모순을 바로잡기 위하여 실시되는 범국민적 개혁 운동이다. 기본 이념은 참여민주주의 실현, 자율적 시장경제 완성, 사회정의 실현, 보편적 세계주의 구현, 창조적 지식 기반 국가 건설, 협력적 신노사 문화 창출, 남북간 교류 협력 시대 개막 등에 두고 있다. 제2의 건국운동은 국민이 주도하고 관이 지원, 협력하는 민관 협력 체제이다. 과거의 적폐 청산과 부정부패 추방, 국민 화합 등을 위하여 추진되고 있다.

[사회단체]

예산군 지역에서는 다양한 사회단체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성격별로 구분하면 공공단체, 사회복지 단체, 여성단체, 봉사 단체, 보훈 단체, 전통 및 역사 기념 단체, 직능 단체, 문화 및 시민 단체, 기타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공공단체는 대부분 전국적으로 조직된 단체의 예산군지부 혹은 지회의 형태로 존재한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예산군협의회, 새마을운동 중앙협의회 예산군지회, 한국자유총연맹 예산군지부, 바르게살기운동 예산군협의회, 제2의 건국추진위원회, 민족통일 예산군협의회, 예산 행정협의회, 예산 이장단협의회, 예산 주민자치위원회 등이다.

사회복지 단체 또한 전국 단체의 예산 지역 지부이다. 대한노인회 예산군지회,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예산지구협의회, 예산군 생활개선회 등이며, 여성단체로는 예산군 여성단체협의회, 새마을부녀회 예산군지부, 전국주부교실 예산군지회, 한국부인회 예산군지회 등이 활동 중이다. 봉사 단체로는 라이온스클럽, JC[청년회의소], 로타리클럽, 의맥회, 한국 BBS 대전충남연맹 예산군지부, 예청연합회, 무궁화봉사단, 예빛봉사단, 예산성당 밀알회 등이 있다. 보훈 단체는 대한상이군경회 예산군지회, 대한전몰유적회 예산군지회 등이 있다. 전통 및 역사 기념 단체로는 사단법인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월진회, 예산군 유도회 등이 활동하고 있으며, 직능 단체로는 예산군 재향군인회, 예산군 농민회, 예산군 4-H 연합회, 농촌지도자 예산군연합회, 농업경영인 예산군연합회, 한국음식업중앙회 예산군지부, 예산군 의사회, 예산자율방범대 등이 있다. 문화 및 시민 단체는 한국예술단체 총연합회, 예산주민연대, 책마당, 예산문화연구소 등이 설립되어 있으며, 기타 단체로는 예산문화원, 복지농도원, 매헌민족대학 등이 있다.

[전망]

예산 지역은 내포 지역의 중심지로서 유리한 자연, 지리를 바탕으로 전통사회가 형성, 발전되어 시대별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의 창구로서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로 인하여 일제강점기까지 물류의 중심지로서 기능을 발휘하였지만, 1970년 이후부터 도시화·산업화로 인한 인구 감소에 직면하게 되면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점이 야기되었다. 예산군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농촌사회로서 존립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황토사과 홍보, 온천 도시 특화, 슬로시티 지정, 귀농인 및 다문화가족 지원, 황새마을 조성, 산업형 관광도시 조성, 전통경제 활성화, 도시재생 및 환경개선사업, 교통시스템 구축, 문화관광 브랜드 개발, 환경보전과 관리, 경관 특성화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최근에 홍성과 예산 일원에 형성된 내포신도시와 함께 상생 발전할 수 있는 중장기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이로 인한 전통문화의 단절과 멸실 등의 문제점이 발생되므로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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