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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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경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의 산악 지역에서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바라며 산신에게 지내는 제사.
[개설]
산신제는 천신 숭배에 뿌리를 둔 대표적인 마을 신앙 가운데 하나이다. 고대에는 신라의 삼산 오악(三山五嶽), 백제의 삼산 신앙(三山信仰), 그리고 고구려의 산천제(山川祭) 등에 나타난 것처럼 산신에 대한 숭배가 국가의 중요한 행사였고, 이러한 전통은 고려와 조선시대로 이어졌으며, 일찍이 마을 단위의 제의로 스며들었다.
산신제는 과거에는 마을 주변에 산이 발달된 지역에서 산짐승의 피해가 많아 이를 예방하기 위해 호랑이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산신은 마을에서 모시는 최고의 신령이기에, 마을에서는 주민들의 안녕과 농작물의 풍작을 기원하며 동제(洞祭)로서 산신제를 모셨다.
예산군에서 전승되는 제사는 산신제 단독으로 행해지기도 하지만 산신제-오방제, 산신제-노신제, 산신제-노신제-정자나무제-샘제, 상당제[산신당]-중당제[칠성당]-하당제[장승과 솟대] 등으로 상당제와 하당제가 함께 거행되기도 한다. 산신제를 마치면 이티리 습실, 예림1리, 간량2리, 운산리마을의 각 가정에서는 산신을 마중하는 ‘마짐시루[맞시루, 마중시루]’를 쪄서 장광에 올리기도 하고 서낭제를 지내기도 한다. 산신제는 시월 초승이나 정월 초승에 거행하였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신제를 모시는 제당은 일반적으로 마을 뒤편이나 앞쪽의 산꼭대기나 중턱에 있으며 산제당·제당·산신당·산신각 등으로 불리는데, 예산 지역에서는 바위 아래에 늙은 소나무가 어우러진 자연 제당이거나, 당집과 당샘이 어우러져 있는 형태, 또는 제당 단독으로 건립되는 당집 형태가 더 많았다. 당집은 벽돌이나 블록을 쌓아서 단칸 혹은 두 칸으로 만들며, 지붕은 슬레이트를 얹고, 내부에는 위패나 산신도 등을 봉안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제당 내부에 대여섯 개의 철마(鐵馬)[상가리], 산왕지위(山王之位)[간량2리]·산신국사지위(山神國士之位)·황천후토명산대천지신(皇天后土明山大川之神)[운산리] 등의 위패, 당할머니와 당할아버지를 그린 산신도[내량1리 굴량, 계촌리] 등이 봉안되어 있었다.
[절차]
산신제는 일반적으로 하늘이 내려다보이는 산제당에서 제관, 축관과 유사만이 참석해 거행한다. 제당에 도착하면 메는 직접 지어 올리며, 제물 진설을 마친 후에는 초헌-독축-아헌-종헌-소지 올리기의 순으로 진행한다. 소지는 산신 소지-제관 소지-주민 소지의 순서로 올린다.
특히 조곡리 윗새실 마을에서는 제사 지내러 올라갈 때에 서너 발 길이의 한지로 천신기(天神旗)를 만들어 가져가며, 제사를 마친 후에 태운다.
갈신리 하갈신 큰말에서는 상당·중당·하당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각 제당마다 올리는 제물이 다르다. 상당인 산제당에는 메, 찰무리떡[백설기], 찰적[찹쌀적], 삼색과실, 쇠고기 산적, 두부탕, 맑은 물 등을 올린다. 중당인 칠성당에는 시루떡, 삼색과실, 포, 냉수를 올리며 하당에는 시루떡, 냉수, 포, 두부탕 등을 놓는다. 하당인 솟대와 장승에는 술잔 다섯 개, 포 다섯 마리를 놓는다. 사방의 액을 막고자 오방의 제물을 마련해 올린다. 모든 제사에 술 대신 냉수로 잔을 붓는데, ‘술은 사람만 먹는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
[현황]
예산 지역의 산신제는 삽교읍과 오가면을 제외한 예산군의 모든 면에서 확인되는데, 특히 덕산면, 신양면, 대술면, 예산읍에 더욱 집중되어 나타난다. 이들 지역은 산악이 발달된 지역으로, 산신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면별로 확인되는 마을로는 대술면 방산리 단지동, 송석리, 송석리 화정, 송석리 백제울, 궐곡1리 고새울, 장복리 고모리, 이티1리 습실, 이티리 소고리마을, 광시면 대리 구억말, 운산리, 덕산면 상가리, 광천리, 둔리, 예산읍 예산4리 교남동, 내량1리 굴량, 원방산동, 간량2리, 응봉면 계정1리 안달그물, 계정2구 박달그물, 덕산면 상가리 3구 남전말, 신암면 예림1리, 조곡리 윗새실, 계촌리, 신양면 귀곡리 밀무리, 대흥면 갈산리 하갈신 큰말, 고덕면 호음2리 등이 있다. 이 중 대부분 마을의 산신제는 중단되었다.
1960년대에 미신 타파, 1970년대 독가촌 폐쇄 정책, 청년들의 도시 이주 등으로 중단된 경우가 흔하다. 산신제가 중단된 후에는 무당의 굿당으로 거행되기도 하고[교남동], 주민들이 산제 지낼 사람들끼리만 계를 조직해 운영하기도 한다[계정리]. 마을 단독으로 산신제를 거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간량2리에서는 간량리를 포함해서 산신제를 위하고 싶은 사람들이 계를 조직해 산신제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