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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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僖 |
영어음역 | Gang Hui |
이칭/별칭 | 중열(仲悅)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진각 |
[정의]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중열(仲悅). 아버지는 예조참판 강징(姜瀓),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 처는 나주김씨(羅州金氏)이다. 동생으로 내자시판관 강의(姜儀), 지제교 강억(姜億), 해주목사 강위(姜偉)가 있다. 나주김씨와의 사이에 자녀를 두지 못해 동생인 강의의 아들 강응서(姜應瑞)를 입양했다.
[활동사항]
강희는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음직(蔭職)으로 귀후서별제(歸厚署別提)가 되었고, 이어 사헌부감찰과 신창현감을 지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 웃버대에 있다.
[상훈과 추모]
강희가 죽자 아내 나주김씨는 6년 동안이나 상복을 입었고 평생 빗질을 하지 않고 오로지 지아비만을 그리워했다. 또 기일이 되면 초상(初喪) 때와 다름없이 슬피 통곡을 하였다 하여 절부(節婦)로 정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