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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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夏鎭 |
영어음역 | Yi Hajin |
이칭/별칭 | 하경(夏卿),매산(梅山),육우당(六寓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하경(夏卿), 호는 매산(梅山)·육우당(六寓堂). 아버지는 지평을 역임한 이지안(李志安),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영제군(寧堤君) 이석령(李錫寧)의 딸, 처는 용인이씨(龍仁李氏) 이후산(李後山)의 딸과 안동권씨(安東權氏) 권대후(權代後)의 딸이다. 아들로 이잠(李潛)과 이익(李瀷)이 있다.
[활동사항]
이하진은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1654년(효종 5)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62년(현종 3) 내시교관을 지냈다. 1666년 식년문과에 2등으로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 사옹원직장, 성균관전적을 거쳐 사헌부지평, 사헌부장령 등을 지냈고, 이후 승정원도승지를 역임하였다.
1680년(숙종 6) 사간원대사간에 재직할 때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상소한 것을 변호하다가 진주목사로 좌천되었다. 허목은 영의정 허적(許積)의 서자인 허견의 불법 행위에 대해 상소하였다. 이후 남인에서 서인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경신환국(庚申換局) 과정에서 삭탈관직되고 이어 평안도 운산에 유배되었다가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향리에 거주할 때 안산의 수리산(修理山) 아래에 생활 터전을 마련하고는 천지(天地)간에 몸을 두고, 경사(經史)에 마음을 두며 술잔 속에 운치를 두고, 자연 속에 눈을 두며, 시구(詩句) 속에 흥을 두고 서법(書法) 속에 정신을 둔다는 의미로 당호를 ‘육우당(六寓堂)’이라 명명하였다. 이하진의 표현에 따르면, 그곳은 토양이 비옥하고 수풀이 무성하며 귀신의 가호가 있을 만한 곳으로 족히 30~50가구 정도는 포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육우당은 현재의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의 자연 취락 가운데 한 곳인 마실[매실곡(梅實谷) 또는 매곡(梅谷)] 일대로 추정된다.
[학문과 사상]
이하진은 박학(博學)의 학문 태도를 중시하였는데 이런 전통은 남인계 대표적 학자인 허목의 상고(尙古) 정신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뒤에 성호 이익에게로 이어졌다.
[저술 및 작품]
시문집으로 『육우당유고(六寓堂遺稿)』4권 4책과 필사본인 『매산잡저(梅山雜著)』2권2책이 전한다. 『육우당유고』에는 시 1,916수와 문(文) 111편이 수록되어 있고, 『매산잡저』에는 시 286수와 문 58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매산잡저』의 시문은 모두 『육우당유고』에 수록되었다. 또 글씨로 문수사풍담대사비(文殊寺楓潭大師碑)가 전한다
[묘소]
묘소는 처음에는 경기도 고양의 혜음령(惠陰嶺) 아래에 있었는데 이후 양주를 거쳐 1692년(숙종 18) 원주로 이장되어 현재의 강원도 원주시 매산공원 내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85년(숙종 11) 복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