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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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渾 |
영어음역 | Choe Hon |
이칭/별칭 | 태호(太浩),독선당(獨善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계형 |
[정의]
조선 전기 안산에 정착한 입향조이자 문신.
[가계]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태호(太浩), 호는 독선당(獨善堂). 할아버지는 최담(崔潭), 아버지는 부사직 최자준(崔自濬), 어머니는 이윤종(李胤宗)의 딸, 처는 철원최씨(鐵原崔氏)로 최승진(崔承溍)의 딸이다. 양주최씨(楊州崔氏)의 시조는 고려 공민왕 때 학행(學行)으로 양주군(楊州君)에 봉해지고 문경(文敬)이란 시호를 받은 청계 최억(崔億)이다.
양주최씨 일문은 최혼의 다섯 아들 대에 와서 크게 현달하기 시작하였다. 큰아들인 호은(湖隱) 최홍부(崔弘溥)는 안산 사동에서 태어나 사마시에 급제한 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부친과 함께 책을 읽다가 전라도 고부(古阜)로 가서 정착하였다. 그 뒤로 후손들이 28세 490여 년 동안 오래도록 그곳에 세거하였다.
[활동사항]
최혼은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으며, 특히 예법(禮法)에 밝아 명성이 높았다고 전해지는데 관직에 나아가 정5품 통덕랑에 이르렀으나 1498년(연산군 5)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자 연산군의 폭정에 혐오감을 느끼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모시고 반월 지역의 구포(鷗浦)[현 안산시 상록구 사동] 감자골로 입향하여 독선당(獨善堂)을 지어 놓고 자적자수(自適自修)하였다.
독선당의 현판을 쓴 윤개(尹漑)[1494~1566]는 최혼의 동문으로 명종 때 을사사화에 가담하여 위사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좌의정에 올랐지만 선조 초에 을사원흉으로 규탄 받아 모든 훈작이 삭탈된 인물이다. 독선당에는 후손이 지은 게판운(揭板韻) 수십 수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묘소]
묘소는 본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 83-8번지 묘역이 있었으나 1976년 이래 반월공단 신도시 개발로 묘역의 상당 지역이 당국에 의해 수용되어 사라졌다.
[상훈과 추모]
후손들이 매년 10월 1일 묘역에서 시향제(時享祭)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