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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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石器遺物 |
영어공식명칭 | Neolithic Relic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나건주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각종 유물.
[개설]
신석기시대는 뗀석기[타제석기(打製石器)]를 사용하던 구석기시대에 이어 간석기[마제석기(磨製石器)]를 만들고 사용한 시대라는 뜻으로 영국의 박물학자 존 러복(John Lubbock)에 의해 제창되었다. 이후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과 토기 제작이 신석기시대를 정의하는 문화요소로 추가되었다.
후빙기(後氷期) 이후 지구의 기후는 점차 온난화되었으며, 현재와 같은 환경조건을 토대로 세계 각지에서는 구석기시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신석기시대 문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신석기시대에 나타나는 급격한 변화에 대해서 고든 차일드(V. Gordon Childe)는 ‘신석기혁명’으로 정의하면서 농경 또는 식량 생산의 출현이 신석기시대의 필수조건임을 강조하였다. 세계 각지의 농경 출현은 자연 또는 인문 환경의 차이에 따라 시기적인 차이를 보이며, 신석기시대의 정의 또한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기준이 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토기를 신석기시대 시작의 지표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시작을 알려 주는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는 제주 고산리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제주 고산리 유적에서 확인된 토기는 기원전 6,300년 무렵 일본에서 분출한 AT화산재 아래의 토층에서 출토되었다. 따라서 유적의 형성은 적어도 화산 분출 이전으로 볼 수 있으며, 함께 출토된 화살촉과 좀돌날몸돌[세석인핵(細石刃核)] 등은 동북아시아 신석기시대 초창기 문화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 1만 년 전으로 소급될 가능성도 있다.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무렵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면서 끝나게 된다.
[신석기시대의 생계 방식]
고든 차일드에 의해 정의된 ‘신석기혁명’에서는 농경의 출현이 신석기시대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는 농경에 앞서 토기가 출현한다. 한반도 중서부와 그 이남 지역의 신석기시대 토기는 바닥이 뾰족한 빗살무늬토기[즐문토기(櫛文土器)]이며, 도토리의 탄닌(Tannin) 성분을 제거하기 위한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빗살무늬토기의 기능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생계 방식은 구석기시대에서 계속된 수렵·채집 경제가 중심을 이루며 일부 잡곡의 재배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신석기 유적에서 출토되는 석기의 구성을 보면 식량 채집 도구 또는 농경 도구로 추정되는 굴지구(掘地具)가 주요한 석기에 해당하는데, 이로 보아 수렵과 채집이 중요한 생계 방식이었을 것이다. 아산 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과 동시기에 해당하는 다른 지역의 일부 신석기 유적에서는 조와 같은 잡곡이 탄화된 상태로 검출되기도 하는데, 일부 잡곡류의 재배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산의 유적과 유물]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는 1999년 탕정면 매곡리와 명암리 일대에서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에 해당하는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지표조사를 통해 수습되면서 신석기시대 문화상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2004년 풍기동유적에서 신석기시대의 주거지 2기와 구덩이 모양의 집터[수혈유구(竪穴遺構)] 1기가 처음으로 발굴 조사되었고, 개발행위가 증가하면서 발굴 조사된 유적의 수도 차츰 증가하였다.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풍기동유적, 성내리유적, 장재리 안강골유적, 용화동 가재골유적, 백암리유적 등이다. 조사된 유적은 모두 마을 유적이다.
장재리 안강골유적에서 14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어 가장 규모가 큰 마을에 해당하며, 풍기동유적 2기, 성내리유적 4기 등 일부 제한된 범위만 조사되어 규모가 커질 가능성도 있지만 대체로 작은 규모의 유적이 대부분이다. 조사된 주거지의 형태는 바닥 중앙에 화덕자리[노지(爐址)]가 설치된 장방형의 주거로 내부에서는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빗살무늬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었다. 빗살무늬토기에 새겨진 문양은 세로생선뼈무늬[횡주어골문(橫走魚骨文)]가 주된 문양이며 마름모찍은무늬[능격문(菱格文)], 빗금마름모무늬[능형집선문(菱形集線文)], 짧은가로줄무늬[횡단선문(橫短線文)], 바둑판무늬[격자문(格子文)] 등이 확인된다. 석기류는 식량 채집구인 뒤지개[굴지구(掘地具)]를 중심으로 갈판[마곡석(磨穀石)]과 갈돌[석봉(石棒)], 숫돌[지석(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 유적의 연대는 토기에 새겨진 문양을 토대로 비정된다. 이른 시기에 성행했던 문양으로 알려진 짧은빗금무늬[단사선문(短單線文)]가 풍기동유적에서 일부 확인되지만 예외적이며, 세로생선뼈무늬·마름모찍은무늬·바둑판무늬 등 기원전 3,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성행했던 문양이 대부분이다. 아산 지역에서 조사된 신석기시대 유적의 수는 많지 않으며 기원전 3,500년 전보다 이른 시기의 유적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