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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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邑內洞山城 |
영어공식명칭 | Eupnae-dong Sanseong Fortres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 |
집필자 | 서정석 |
현 소재지 | 읍내동산성 - 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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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산성 |
양식 | 포곡식 석축 산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970m[둘레]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에 있으며 백제 시대로 추정되는 석축 산성.
[개설]
읍내동산성(邑內洞山城)은 옛 온양군 관아 바로 뒤쪽에 솟아 있는 연산(燕山)[121.1m]의 정상부와 산의 중턱[중복(中腹)]에 걸쳐 삼태기형으로 축성되어 있는 석축 산성이다.
[건립 경위]
읍내동산성의 축조 시기와 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온조왕 36년[서기 18년]에 탕정성(湯井城)을 축조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읍내동산성이 바로 탕정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위치]
아산시청에서 국도 39호선을 타고 송악면 방면으로 4㎞ 정도 가면 읍내동에 닿게 된다. 읍내동 뒷산이 연산이고, 연산 정상부에 읍내동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연산은 백제시대 이래로 고을의 관아가 있는 치소(治所)의 배산(背山)이었다.
[형태]
읍내동산성은 동서로 이어져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를 에워싸면서 축조하였다. 따라서 동서 방향으로는 길고, 남북 방향으로는 짧은 직사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아울러 북벽이 산의 정상부를 지나고 있는 데 비해 남벽은 산의 중턱을 지나고 있어 북고남저(北高南低), 서고동저(西高東低)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970m에 이른다. 북벽과 동벽은 안과 밖 모두를 돌로 쌓는 협축식(夾築式)이고 경사면에 축조된 서벽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바깥쪽만 돌을 쌓는 편축식(片築式)이다. 동벽의 경우 남아 있는 성벽의 바깥 높이 6m, 안쪽 높이 1.5m, 윗부분 너비 3m 정도의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서벽과 남벽이 만나는 지점에 치성(雉城)[성벽에서 바깥으로 사각 형식으로 덧붙여서 만든 성벽]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있다.
성내의 부대시설로는 건물지, 문지, 우물터 등이 확인된다. 성문의 흔적은 동벽, 남벽, 북벽에서 확인된다. 건물지는 성내 곳곳에 남아 있다.
[현황]
읍내동산성은 성벽이 완전히 붕괴되어 축성법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구간은 한 곳도 남아 있지 않다. 남벽의 경우에는 성벽의 통과선조차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유실되었다. 다만 부분적으로 성벽을 쌓은 돌이 남아 있고, 극히 일부에서는 축성한 성벽의 모습이 남아 있다. 성벽의 보존 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곳은 동벽이다. 건물지 주변에서는 기와 조각, 토기 조각, 자기 조각 등의 유물을 쉽게 수습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읍내동산성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지만, 아산 지역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산성 중의 하나다. 백제 건국 초기에 축조된 탕정성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온조왕이 쌓은 탕정성이 아니어도 백제시대 탕정군, 고려시대 온수군, 조선시대 온양군 등 시대가 바뀌어도 고을의 관아가 계속 있었던 만큼 지방 통치와 밀접하게 관련된 성곽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오랫동안 기능을 유지해온 산성으로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