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592
한자 晩退洪公兩朝恩褒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 산22-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민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645년 - 홍만조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725년 - 홍만조 사망
건립 시기/일시 1742년연표보기 - 만퇴홍공 양조은포비 건립
현 소재지 만퇴홍공 양조은포비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 산22-1 지도보기
성격
양식 비좌개석
관련 인물 홍만조
재질 오석|화강석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홍만조에 관한 비.

[개설]

홍만조(洪萬朝)[1645~1725]는 조선 후기 문신이며, 호는 만퇴(晩退)이다. 1678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각 도 관찰사(觀察使)를 지내고 형조판서(刑曹判書)를 거쳐 1719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722년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내고 81세로 사망하였다. 만퇴홍공 양조은포비(晩退洪公兩朝恩褒碑)홍만조의 묘 앞에 세워져 있다.

[건립 경위]

만퇴홍공 양조은포비만퇴 홍만조가 숙종, 영조에게 받은 은혜를 기리기 위해 1742년 건립된 비석이다. 숙종과 영조가 홍만조를 신뢰하고 홍만조의 공적을 치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홍만조의 아들 홍중인(洪重寅), 홍중징(洪重徵)이 1742년에 비석을 건립하였다.

[위치]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에 있는 홍만조의 묘 옆에 있다. 봉분 좌우에는 1727년에 건립한 묘표(墓表)와 1742년에 건립한 만퇴홍공 양조은포비가 건립되어 있다. 묘역 남쪽 아래 길가에는 1769년에 건립한 홍만조 신도비(神道碑)도 있다.

[형태]

만퇴홍공 양조은포비는 네모난 비석 받침[碑座] 위에 비신(碑身)과 지붕돌[蓋石])을 올려놓았다. 비석 받침에는 아무런 문양이 없으며, 오석(烏石)으로 만든 비신은 앞뒤로 비문을 새겨 놓았다. 또 비신 상단에는 ‘만퇴홍공 양조은포비(晩退洪公 兩朝恩褒碑)’를 예서(隸書)로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팔작지붕 형태로 만들었으며,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등을 높게 조각했다.

[의의와 평가]

만퇴홍공 양조은포비의 비문에는 숙종과 영조가 홍만조를 평가한 내용이 있다. 숙종이 경현당(景賢堂)에 홍만조가 입시하자 눈물을 머금고 "경 또한 들어왔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조는 홍만조가 세상을 떠난 뒤 여러 차례 그가 8도 감사를 지내면서 바르게 다스린 것을 칭찬했다고 한다. 또한 숙종 계비(繼妃) 인원왕후(仁元王后)는 숙종이 홍만조를 신뢰한 이야기를 영조에게 했다고 한다.

홍만조 사후 영조의 배려로 아들 홍중인, 홍중징이 여러 지방관에 임명되었으며, 1741년 홍중인이 홍만조 묘에서 멀지 않은 한산군수(韓山郡守)에 제수된 점 등이 이 비석 건립의 주요 계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아버지를 찬양하기 위해 비석을 건립했지만, 숙종과 영조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색다른 비석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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