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610 |
---|---|
한자 | 外岩-磐石石刻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홍승균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919년 - 외암마을 반석 석각 조성 |
---|---|
현 소재지 | 외암마을 반석 석각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반석거리 |
성격 | 석각 |
관련 인물 | 이백선|이용찬 |
크기(높이,길이,둘레) | 외암동천 석각-52㎝[높이]|175㎝[너비]|50㎝[두께]///동화수석 석각-약 50㎝[높이]|200㎝[너비]|50㎝[두께]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시기의 석각.
[개설]
아산 외암마을은 5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 마을로, 특히 조선 후기의 대학자 예안이씨 외암 이간 선생을 배출한 유서 깊은 마을이다. 또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마을이며 마을 입구에 외암마을 반석 석각이 있다.
[건립 경위]
’동화수석’은 이백선[1893~1969]이 1919년에 썼는데 ‘돌과 물이 어우러져 신선이 사는 데처럼 아름다운 곳’이라는 의미이다. ‘외암동천’은 무릉도원의 선경처럼 ‘신선이 사는 곳 같은 아름다운 외암마을’로 풀이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용찬[1901~?]은 건재당 이욱렬의 셋째 아들이며, 1938년 조선변호사시험 예비시험에 합격했고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판사로 발탁된 인물이다. ‘외암동천’ 글씨는 ‘동화수석’과 같은 1919년, 또는 그 이후에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 모두 외암마을에 살았던 예안이씨 20세이며 두 석각 모두 잘 쓴 글씨라 보기는 어렵다.
[위치]
외암마을 반석(磐石) 석각(石刻)은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반석거리에 있다. 외암마을의 입구이며, 마을로 진입하는 돌다리[반석교]를 건너면 왼편 아래에 석각이 있다. 외암천을 건너는 반석교 주변이 바닥이 반석, 즉 넓은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일대를 반석거리라 부른다. 왼쪽에 물레방아가 설치되어 있고, 바로 위 마을 입구의 동산이라는 솔숲에는 반석정이라는 모정(茅亭)이 세워져 있다.
[형태]
외암마을 반석 석각은 외암천의 마을 쪽 제방 축대 근처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각각 새겨져 있다. ‘외암동천(巍巖洞天)’이라는 글씨는 마을을 보며 오른쪽 바위에 너비 175㎝에 높이 52㎝ 정도로 새겨져 있고 끝에 세로로 ‘이용찬서(李用贊書)’라고 씌어 있다. 그 왼쪽 앞 암반 위 바위 무더기 중 맨 위 바위에 너비 2m, 높이 50㎝가량의 ‘동화수석(東華水石)’ 글씨를 중심으로 앞에 ‘기미(己未)’, 뒤에 ‘이백선서(李伯善書)’라고 작게 새겨져 있다.
[현황]
외암동천 석각이 있는 바위 위에는 후대에 제방을 조성하며 석축이 이루어졌다. 최근에 두 석각 모두 글씨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해 붉은색을 칠하였다.
[의의와 평가]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 있는 외암마을은 우리나라의 3대 민속 마을로, 연중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는 명소이다. 외암마을 입구에 명패처럼 새겨져 있는 외암마을 반석 석각은 마을 가까이에서 보기 드문 반석과 물레방아, 돌다리 등과 어우러져 전통 마을로 진입하는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키며 마을의 품격과 역사성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