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6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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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牙山蔣氏 |
영어공식명칭 | Asan Ja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필준 |
입향 시기/일시 | 1105년~1122년 - 장서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에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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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아산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
입향지 | 문방리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
묘소|세장지 | 장서 묘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
성씨 시조 | 장서 |
입향 시조 | 장서 |
[정의]
장서를 시조 겸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세거성씨.
[개설]
아산장씨(牙山蔣氏)는 충청남도 아산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시조(始祖) 겸 아산시의 입향조(入鄕祖)는 장서(蔣壻)이다.
[연원]
중국 주나라 때 주공(周公)의 셋째 아들 주백령(周伯齡)이 허난성[河南省] 기사현(期思縣)을 장국(蔣國)으로 하사받아 나라 이름을 성(姓)으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다. 아산장씨(牙山蔣氏)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신경위대장군(神慶衛大將軍)을 지낸 장서(蔣壻)이다. 금나라가 송나라에 쳐들어올 때, 항전을 주장하다가 망명하여 배를 타고 고려에 왔다고 한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배가 닿았기 때문에 아산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고려 예종이 이를 듣고 아산부원군(牙山府院君)에 책봉하였다는 말이 『기미보(己未譜)』에 전해지며, 이후 후손들이 본관을 아산으로 삼았다.
[입향 경위]
장서가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아산장씨가 세거하였고, ‘장원촌(蔣原村)’이라는 지명도 생겼다. 후손 중에는 고려시대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겸 도총사(都摠使)를 역임한 장숭(蔣崇),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장균(蔣均) 등 여러 인물이 나왔다. 특히 조선 세종 때의 인물인 장영실(蔣英實)이 유명하다. 장서의 묘는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에 있다. 일찍이 멸실되었던 것을 후손들이 현재의 자리를 찾아 토지를 매입하고 1967년 신당을 헐고 봉분을 만들었으며, 2006년에 정비하였다.
[현황]
2015년 기준으로 아산장씨는 전국적으로 2만 1015명이 살고 있는데, 그중 충청남도에 369명, 아산시에 86명이 거주 중이다. 아산장씨의 분파로는 중은공파(仲殷公派), 연공파(延公派), 문도공파(聞道公派), 방도공파(方道公派), 숙강공파(叔岡公派)가 있다. 중국에서 이주해 온 역사를 살려 중국과 대만의 장씨(蔣氏) 문중과 교류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